언론보도
[우이신설스토리문학]‘동북권역마을배움터’ 언덕길을 올라가 골목 왼쪽을 쳐다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간 속을 걸어갔다.

 우이의 장소들 8. ‘동북권역마을배움터’ 언덕길을 올라가 골목 왼쪽을 쳐다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간 속을 걸어갔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강명숙 –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강명숙    ‘92년 품의 첫 시작, 왜 행복하냐.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어서’    1992년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표님이 어린 시절 음악을 했었다고. 그때 음악을 통해 자기 나름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끼고 행복감을 느꼈는데 주변엔 먹고 살기 힘드니 그만두라는 어른들이 많았다고 한다. 훗날 대표님이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음악을 했을 때 왜 행복하냐, 그것이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고.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청년 세 명의 의기투합으로 처음 품이 시작되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중학교 2학년 때 그렇게 시작된 품의 청소년 캠프에서 처음 품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중학교 2학년 때 출발된 인연은 2002년 품에 입사하는 것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어릴 때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품을 이끄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저렇게 사는 것도 즐거워 보였다는 생각을 했다고. 특히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속에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정신적인 성장을 느꼈던 것이 품의 매력이었다고 설명했다. 90년대 당시 품은 역사, 우리나라만의 정신, 우리만의 놀이문화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삶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처음 삶의 뿌리가 강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청소년들이 강을 찾아갔고, 그러한 강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 끝에 강은 산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산에 직접 찾아갔다고. 또한 마지막엔 이 물은 결국 바다에 간다는 결론으로 바다에 갔다고. 8박 9일 동안 작은 소모임으로 이루어진 각 모둠이 저마다 각지의 자연을 탐험하며 작은 여행들을 만들어냈고, 나중에는 모든 구성원이 만나 각자의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키워드 ‘지역’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기에’    그러나 이 여행에서 또 다른 질문을 얻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서 하는 활동들은 너무 좋지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품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북에 정착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을 만나게 됐고, 열악한 청소년의 삶을 바꾸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다고. 축제를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 이 시대상에 맞는 청소년 축제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 끝에 축제 속에 실제 청소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청소년들이 담는 것이란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추락’(가을 추에 즐길 락. 중의적인 의미)은 20년째 지속되었고, 청소년축제기획단이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을 만들어냈다 한다. 축제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이 일방적인 교육이나 훈육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구성원임을 알게 되는 축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아이들이 아이들의 욕구를 발견하는, 구조와 과정이 있는 축제.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동네의 선생님을 찾아가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축제가 계속되면서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 축제는 그래도 하루면 끝난다. 다른 모든 일상이 축제일 수 없을까. 둘, 기존에 쌓아놓은 축제에 대한 기대와 역량이 있고 아이들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여러 불안감이 극대화되었다. 과연 축제가 아이들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가. 이때 바로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마을마실’이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동네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격이 있는 어떤 선생님들이 아니라 동네 단골 식당의 사장님. 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아주 ‘특별한 선생님’을 찾아가게 됐다고.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그 선생님들은 같은 강북에 사는 주민이기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2000년대를 사는 아이들의 지역성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단순히 어느 동네에 살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고 같은 것이 아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가 사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아이들의 지역성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을마실’은 그것을 체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마을은 세상과 세상의 시스템이 담긴 소우주고. 그 마을을 통해 배움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중요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탄생,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    이후 강북에 동북권역마을배움터가 탄생하고, 품은 그것을 민간 위탁 운영을 맡게 되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단체나, 어떤 인증된 특수한 사람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의 배움’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서울시 조례 개정에 참여해 마을배움터라는 명칭을 제안했고, 이후 공개입찰 참여 과정을 거쳐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운영을 함께 하게 됐다고. 서울에서 유일하게 청소년문화의집이 존재하지 않는 강북구에 청소년을 위한 공공 문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품은 마을 주민, 예술가, 청년, 10대들을 모아 같이 토론해 나갔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 ‘너희 일상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으로서의 마을배움터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계속 부딪히는, 마주치는, 만남이 유발되는,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세상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인 동북권역마을배움터는 북한산우이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도대체 이 공간을 지은 목적이 뭐야? 라고 질문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효율과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문화적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이를테면 두 개의 건물 사이에 구름다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혼자 지나가기엔 넓고, 둘이 지나가기엔 좁은’ 다리라고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부딪히고, 마주치고, 만남이 유발되는 장소. 1층에는 카페가 있어 청소년들이 대학이나 사회로 밀려나기 전 자기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2층은 다목적실이 하나 생기고 반대로 무목적실인 온돌방이 생길 것이라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마을배움터가 하나의 아지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을배움터는 지원을 맡는 아지트고 이곳을 토대로 강북, 성북, 도봉 더 나아가 세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여러 다른 세대를 아우르는 곳. 그 아우름을 통해 배움이 무엇이고, 지역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마을을 관통하는 여러 네트워크. ‘배움의 생태계’를 만드는 곳. 마을 배움의 사례를 실험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것을 통해 청소년이 자신이 사회적 존재인 민주 시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마을과 자신 삶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추신    북한산우이역. 언덕길을 올라가서, 골목을 따라 문득 왼쪽을 쳐다보면. 나는 두둥실 떠올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구름다리를 걸어 나갔다. 멀리서 보면 정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마치 어떤 공간이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일층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커피향에 둘러싸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다목적실에서는 분주하게 어떤 연습이 이루어지고. 무목적실인 온돌방에는 널브러져 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다시 인터뷰 장소인 품의 사무실로 돌아와 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CI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CI에는 한 그루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는 아이 그 밑의 그늘에서 졸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다.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고,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모습이라고. 그리고 나무는 마을배움터가 동북권역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무들이 모여 숲이라는 협력을 이루듯, 그들이 가진 협력의 모습을 담아놓은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정희성 시인의 숲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 

2020.06.05

 우이의 장소들 8. ‘동북권역마을배움터’ 언덕길을 올라가 골목 왼쪽을 쳐다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간 속을 걸어갔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강명숙 –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강명숙    ‘92년 품의 첫 시작, 왜 행복하냐.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어서’    1992년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표님이 어린 시절 음악을 했었다고. 그때 음악을 통해 자기 나름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끼고 행복감을 느꼈는데 주변엔 먹고 살기 힘드니 그만두라는 어른들이 많았다고 한다. 훗날 대표님이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음악을 했을 때 왜 행복하냐, 그것이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고.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청년 세 명의 의기투합으로 처음 품이 시작되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중학교 2학년 때 그렇게 시작된 품의 청소년 캠프에서 처음 품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중학교 2학년 때 출발된 인연은 2002년 품에 입사하는 것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어릴 때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품을 이끄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저렇게 사는 것도 즐거워 보였다는 생각을 했다고. 특히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속에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정신적인 성장을 느꼈던 것이 품의 매력이었다고 설명했다. 90년대 당시 품은 역사, 우리나라만의 정신, 우리만의 놀이문화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삶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처음 삶의 뿌리가 강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청소년들이 강을 찾아갔고, 그러한 강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 끝에 강은 산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산에 직접 찾아갔다고. 또한 마지막엔 이 물은 결국 바다에 간다는 결론으로 바다에 갔다고. 8박 9일 동안 작은 소모임으로 이루어진 각 모둠이 저마다 각지의 자연을 탐험하며 작은 여행들을 만들어냈고, 나중에는 모든 구성원이 만나 각자의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키워드 ‘지역’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기에’    그러나 이 여행에서 또 다른 질문을 얻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서 하는 활동들은 너무 좋지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품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북에 정착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을 만나게 됐고, 열악한 청소년의 삶을 바꾸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다고. 축제를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 이 시대상에 맞는 청소년 축제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 끝에 축제 속에 실제 청소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청소년들이 담는 것이란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추락’(가을 추에 즐길 락. 중의적인 의미)은 20년째 지속되었고, 청소년축제기획단이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을 만들어냈다 한다. 축제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이 일방적인 교육이나 훈육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구성원임을 알게 되는 축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아이들이 아이들의 욕구를 발견하는, 구조와 과정이 있는 축제.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동네의 선생님을 찾아가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축제가 계속되면서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 축제는 그래도 하루면 끝난다. 다른 모든 일상이 축제일 수 없을까. 둘, 기존에 쌓아놓은 축제에 대한 기대와 역량이 있고 아이들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여러 불안감이 극대화되었다. 과연 축제가 아이들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가. 이때 바로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마을마실’이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동네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격이 있는 어떤 선생님들이 아니라 동네 단골 식당의 사장님. 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아주 ‘특별한 선생님’을 찾아가게 됐다고.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그 선생님들은 같은 강북에 사는 주민이기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2000년대를 사는 아이들의 지역성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단순히 어느 동네에 살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고 같은 것이 아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가 사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아이들의 지역성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을마실’은 그것을 체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마을은 세상과 세상의 시스템이 담긴 소우주고. 그 마을을 통해 배움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중요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탄생,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    이후 강북에 동북권역마을배움터가 탄생하고, 품은 그것을 민간 위탁 운영을 맡게 되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단체나, 어떤 인증된 특수한 사람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의 배움’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서울시 조례 개정에 참여해 마을배움터라는 명칭을 제안했고, 이후 공개입찰 참여 과정을 거쳐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운영을 함께 하게 됐다고. 서울에서 유일하게 청소년문화의집이 존재하지 않는 강북구에 청소년을 위한 공공 문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품은 마을 주민, 예술가, 청년, 10대들을 모아 같이 토론해 나갔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 ‘너희 일상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으로서의 마을배움터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계속 부딪히는, 마주치는, 만남이 유발되는,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세상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인 동북권역마을배움터는 북한산우이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도대체 이 공간을 지은 목적이 뭐야? 라고 질문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효율과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문화적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이를테면 두 개의 건물 사이에 구름다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혼자 지나가기엔 넓고, 둘이 지나가기엔 좁은’ 다리라고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부딪히고, 마주치고, 만남이 유발되는 장소. 1층에는 카페가 있어 청소년들이 대학이나 사회로 밀려나기 전 자기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2층은 다목적실이 하나 생기고 반대로 무목적실인 온돌방이 생길 것이라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마을배움터가 하나의 아지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을배움터는 지원을 맡는 아지트고 이곳을 토대로 강북, 성북, 도봉 더 나아가 세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여러 다른 세대를 아우르는 곳. 그 아우름을 통해 배움이 무엇이고, 지역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마을을 관통하는 여러 네트워크. ‘배움의 생태계’를 만드는 곳. 마을 배움의 사례를 실험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것을 통해 청소년이 자신이 사회적 존재인 민주 시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마을과 자신 삶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추신    북한산우이역. 언덕길을 올라가서, 골목을 따라 문득 왼쪽을 쳐다보면. 나는 두둥실 떠올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구름다리를 걸어 나갔다. 멀리서 보면 정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마치 어떤 공간이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일층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커피향에 둘러싸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다목적실에서는 분주하게 어떤 연습이 이루어지고. 무목적실인 온돌방에는 널브러져 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다시 인터뷰 장소인 품의 사무실로 돌아와 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CI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CI에는 한 그루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는 아이 그 밑의 그늘에서 졸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다.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고,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모습이라고. 그리고 나무는 마을배움터가 동북권역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무들이 모여 숲이라는 협력을 이루듯, 그들이 가진 협력의 모습을 담아놓은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정희성 시인의 숲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 

2020.06.05
[한겨레]"이제까지 없었던 상상이 가능한 마을배움터로 오세요"

“이제까지 없었던 상상이 가능한 마을배움터로 오세요”서울시 1호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청년들에게 실패할 권리증 수여 마음껏 도전할 기회 제공 주부활동가를 위한 성찰 여행도서울시-시민단체, 공동으로 기획 수요자 맞춘 다양한 공간 만들어 종전 관청 주도 관행에서 벗어나 <지난 8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무늬만 강당’에서 10만원 프로젝트에 뽑힌 학생들이 실패할 권리증을 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진희(고3)는 어떻게 하면 길고양이를 우리의 친구, 가족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배가 고파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자동차에 치일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을 많이 보았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길고양이 학대와 공장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집 근처에서 길고양이 5~6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씻겨주고 밥을 챙겨주는 등 가족처럼 보살펴주고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그는 건강이 악화하는 길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방법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진희는 지난 8월 이런 생각과 활동을 바탕으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벌이고 있는 ‘10만원 프로젝트’에 응모해 선정됐다. 지난 21일 배움터 개관식 날에는 그동안 길고양이를 소재로 찍은 사진과 일러스트로 직접 만든 엽서 300장을 판매했는데, 100장 넘게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진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따로 후원금을 내기도 했고,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행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길고양이는 길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입니다. 길고양이를 지켜봐 주세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 우이동 북한산 입구에 둥지 서울지하철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에서 도선사 쪽으로 북한산 오르는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왼쪽의 작은 골목에 새로 단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강북구·도봉구 등을 활동 영역으로 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다. 마을배움터는 서울시가 공을 들이고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의 하나인데, 기획 단계부터 시민단체가 직접 참여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정부나 지자체 위탁 사업이 장소를 마련한 뒤 운영할 단체를 선정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공개경쟁입찰을 거쳐 품청소년문화공동체(대표 심한기)가 위탁 단체로 뽑혔다. 북한산에서 가깝고 두 개의 건물이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터라 방과 마당을 두루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변의 주택들 사이에 있으니 그야말로 마을 속의 배움터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 매입해 공사에 들어간 뒤 건물 리모델링 작업은 품의 의도가 거의 다 반영됐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전경.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강명숙 마을배움터 사무국장은 “애초부터 큰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건물이 크면 관리하는 데 어려워 자칫 목적을 잊게 된다. 다만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에 맞게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눠 쓸모를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연면적 100평, 7개 공간의 배움터 건물이 모습을 갖추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다. 지난 6월 말 배움터 식구들이 입주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시작됐고, 지난 21일에는 청소년과 주민, 서울시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공식 개관식 행사를 열었다. 마을배움터는 주로 10대 청소년들이 대상이다. 원할 때 언제든지 올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두고 있다.  마을배움터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라면 ‘10만원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에 나온 진희 학생처럼, 청소년들에게 10만원을 주고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제안한 프로젝트가 뽑히면 배움터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실패할 권리증’을 준다. 보통의 프로젝트는 성공을 조건으로 한다. 너무 성공에 집착하다 보면 실험정신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배움터는 청소년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우려는 새로운 실험이다. 배움터의 활동가 한 명과 청소년이 짝이 돼서 배우면서 실험하고, 실험하면서 다시 배우는 과정을 동행한다.  ■ 식구로서 정서적 일체감 느껴  지난 8월에 10만원 프로젝트 공모를 해서 열 팀을 선정했다. 이 중에 지우(중3) 학생은 ‘청소년 자해’를 주제로 정했다. 사회에서 청소년 자해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듣고 어른들이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하자는 의도다. 내용을 잘 정리해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낼 생각이다.   배움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중에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10대 셰프 학교’다. 텔레비전에서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6명 모집에 36명이 올 정도였다. 여기 모인 10대들은 정형화된 요리가 아니라 자신의 상상이 담긴 요리를 만든다. 2주에 한 번씩 청년 요리사를 강사로 초청해 그의 철학과 경험을 요리에 버무려 담는다. 감자나 당근 등 재료를 하나 정해주고 이야기가 있는 요리를 만들 기회를 준다.  < 10대의 주방에서 감자를 주제로 개인 요리를 하는 10대 셰프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 셰프 학교는 ‘10대의 부엌’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배움터의 철학을 담은 곳이다. 이곳의 활동가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나눈다. 식구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정서적인 유대감을 쌓고,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품에서 28년간 밥을 해 먹던 전통이 이곳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다 먹으면 시간도 적게 걸리고 편리하다. 이곳에서 한 끼를 마련하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 게 다반사다. 시장을 보러 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이 꽤 손이 가기 때문이다.  ‘구해줘! 고3’이란 프로그램도 있다. 학부모들이 알면 좀 화가 날 일이겠다. 고3이란 프레임은 무엇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입시 준비를 위한 공부일 터인데, 여기서는 안 하는 게 목적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삶을 깨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다. 배움터로 와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가슴속에 품은, 부모나 교사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치킨·피자 등을 시켜 먹으면서 서너 시간씩 수다를 떨거나 쇼핑하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10대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는데 6명밖에 오지 않았다. 사회가 그만큼 고3을 굴레에 가뒀고, 그 굴레를 깨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난 21일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방’에서 10대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남의 삶을 고민하다가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주부활동가를 위한 여행학교 숨도 특별하다. 낮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지친 하루를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주부라는 무게에 허리가 휜다. 이러한 활동가들에게 생활에서 벗어나 삶을 성찰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자신을 추스를 여행을 기획하는 것이다. 여행 경험을 다른 활동가와 공유하고 책으로도 출판하는 것이다. 한 활동가는 가족 여행은 많이 했지만 혼자 여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가는 여행을 준비해서 떠났다. 지난여름 2주간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혼자 한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활기를 선물했다. 싸우고 사이가 멀어진 친구와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고민하고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도와주는데, 여행비용을 지원해주지 않는 게 좀 아쉽다.  <지난 21일 열린 개관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 하객들과 배움터 학생·운영진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 청년들 욕구 조사해 맛보기 실험  이 밖에 10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발견한 욕구를 실험하는 ‘맛보기 학교’다. 실험을 거쳐서 검증되면 프로그램 자격을 얻게 된다. 그중 하나가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고 시음하고 평가하는 ‘커피 클래스’다. 누구나 와서 만들어볼 수 있다. 이곳은 카페가 아니라 ‘낭만 공유지’란 이름을 붙였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공간의 주인이 돼서 운영할 수 있다. 커피도 음료는 돈을 받고 팔지 않고, 이곳에서만 쓸 수 있는 낭만 화폐를 받는다. 배움터의 활동에 참여하면 정해진 낭만을 받을 수 있다.  강명숙 사무국장은 “배움터는 청소년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신나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라며 “앞으로 이런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2020.06.03

“이제까지 없었던 상상이 가능한 마을배움터로 오세요”서울시 1호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청년들에게 실패할 권리증 수여 마음껏 도전할 기회 제공 주부활동가를 위한 성찰 여행도서울시-시민단체, 공동으로 기획 수요자 맞춘 다양한 공간 만들어 종전 관청 주도 관행에서 벗어나 <지난 8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무늬만 강당’에서 10만원 프로젝트에 뽑힌 학생들이 실패할 권리증을 받은 뒤 활짝 웃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진희(고3)는 어떻게 하면 길고양이를 우리의 친구, 가족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배가 고파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자동차에 치일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을 많이 보았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길고양이 학대와 공장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집 근처에서 길고양이 5~6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씻겨주고 밥을 챙겨주는 등 가족처럼 보살펴주고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그는 건강이 악화하는 길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방법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진희는 지난 8월 이런 생각과 활동을 바탕으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벌이고 있는 ‘10만원 프로젝트’에 응모해 선정됐다. 지난 21일 배움터 개관식 날에는 그동안 길고양이를 소재로 찍은 사진과 일러스트로 직접 만든 엽서 300장을 판매했는데, 100장 넘게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진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따로 후원금을 내기도 했고,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행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길고양이는 길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입니다. 길고양이를 지켜봐 주세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 우이동 북한산 입구에 둥지 서울지하철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에서 도선사 쪽으로 북한산 오르는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왼쪽의 작은 골목에 새로 단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강북구·도봉구 등을 활동 영역으로 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다. 마을배움터는 서울시가 공을 들이고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의 하나인데, 기획 단계부터 시민단체가 직접 참여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정부나 지자체 위탁 사업이 장소를 마련한 뒤 운영할 단체를 선정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였기 때문이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공개경쟁입찰을 거쳐 품청소년문화공동체(대표 심한기)가 위탁 단체로 뽑혔다. 북한산에서 가깝고 두 개의 건물이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터라 방과 마당을 두루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변의 주택들 사이에 있으니 그야말로 마을 속의 배움터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 매입해 공사에 들어간 뒤 건물 리모델링 작업은 품의 의도가 거의 다 반영됐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전경.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강명숙 마을배움터 사무국장은 “애초부터 큰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건물이 크면 관리하는 데 어려워 자칫 목적을 잊게 된다. 다만 청소년들의 다양한 활동에 맞게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눠 쓸모를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연면적 100평, 7개 공간의 배움터 건물이 모습을 갖추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다. 지난 6월 말 배움터 식구들이 입주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시작됐고, 지난 21일에는 청소년과 주민, 서울시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공식 개관식 행사를 열었다. 마을배움터는 주로 10대 청소년들이 대상이다. 원할 때 언제든지 올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두고 있다.  마을배움터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라면 ‘10만원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에 나온 진희 학생처럼, 청소년들에게 10만원을 주고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제안한 프로젝트가 뽑히면 배움터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실패할 권리증’을 준다. 보통의 프로젝트는 성공을 조건으로 한다. 너무 성공에 집착하다 보면 실험정신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배움터는 청소년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우려는 새로운 실험이다. 배움터의 활동가 한 명과 청소년이 짝이 돼서 배우면서 실험하고, 실험하면서 다시 배우는 과정을 동행한다.  ■ 식구로서 정서적 일체감 느껴  지난 8월에 10만원 프로젝트 공모를 해서 열 팀을 선정했다. 이 중에 지우(중3) 학생은 ‘청소년 자해’를 주제로 정했다. 사회에서 청소년 자해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듣고 어른들이 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하자는 의도다. 내용을 잘 정리해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낼 생각이다.   배움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중에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10대 셰프 학교’다. 텔레비전에서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6명 모집에 36명이 올 정도였다. 여기 모인 10대들은 정형화된 요리가 아니라 자신의 상상이 담긴 요리를 만든다. 2주에 한 번씩 청년 요리사를 강사로 초청해 그의 철학과 경험을 요리에 버무려 담는다. 감자나 당근 등 재료를 하나 정해주고 이야기가 있는 요리를 만들 기회를 준다.  < 10대의 주방에서 감자를 주제로 개인 요리를 하는 10대 셰프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 셰프 학교는 ‘10대의 부엌’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배움터의 철학을 담은 곳이다. 이곳의 활동가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나눈다. 식구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정서적인 유대감을 쌓고,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품에서 28년간 밥을 해 먹던 전통이 이곳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다 먹으면 시간도 적게 걸리고 편리하다. 이곳에서 한 끼를 마련하려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 게 다반사다. 시장을 보러 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이 꽤 손이 가기 때문이다.  ‘구해줘! 고3’이란 프로그램도 있다. 학부모들이 알면 좀 화가 날 일이겠다. 고3이란 프레임은 무엇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입시 준비를 위한 공부일 터인데, 여기서는 안 하는 게 목적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삶을 깨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다. 배움터로 와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가슴속에 품은, 부모나 교사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치킨·피자 등을 시켜 먹으면서 서너 시간씩 수다를 떨거나 쇼핑하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10대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 누구나 올 수 있도록 했는데 6명밖에 오지 않았다. 사회가 그만큼 고3을 굴레에 가뒀고, 그 굴레를 깨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난 21일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방’에서 10대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남의 삶을 고민하다가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주부활동가를 위한 여행학교 숨도 특별하다. 낮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지친 하루를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가면 주부라는 무게에 허리가 휜다. 이러한 활동가들에게 생활에서 벗어나 삶을 성찰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자신을 추스를 여행을 기획하는 것이다. 여행 경험을 다른 활동가와 공유하고 책으로도 출판하는 것이다. 한 활동가는 가족 여행은 많이 했지만 혼자 여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가는 여행을 준비해서 떠났다. 지난여름 2주간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혼자 한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활기를 선물했다. 싸우고 사이가 멀어진 친구와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고민하고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도와주는데, 여행비용을 지원해주지 않는 게 좀 아쉽다.  <지난 21일 열린 개관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등 하객들과 배움터 학생·운영진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제공>   ■ 청년들 욕구 조사해 맛보기 실험  이 밖에 10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발견한 욕구를 실험하는 ‘맛보기 학교’다. 실험을 거쳐서 검증되면 프로그램 자격을 얻게 된다. 그중 하나가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고 시음하고 평가하는 ‘커피 클래스’다. 누구나 와서 만들어볼 수 있다. 이곳은 카페가 아니라 ‘낭만 공유지’란 이름을 붙였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공간의 주인이 돼서 운영할 수 있다. 커피도 음료는 돈을 받고 팔지 않고, 이곳에서만 쓸 수 있는 낭만 화폐를 받는다. 배움터의 활동에 참여하면 정해진 낭만을 받을 수 있다.  강명숙 사무국장은 “배움터는 청소년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신나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라며 “앞으로 이런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