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해석
[2020.10] 지:문 - 청년의 아포리즘(Aphorism)

청년, 문제인가 존재인가생각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언어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내일은 그 공허함까지도 가물가물해질 것 같다. 익숙한 편리함들이 빠르게 스쳐가는 시간에게 몸을 맡긴 듯하다. 그래서인가. 그것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한 시간의 삶, 하루의 삶을 귀하게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잘 안 보인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서사(narrative)들이 잘 안 보인다. 2019년부터 지역문화진흥원과 함께 ‘지역문화우리’ 청년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도 잘 보이지 않는 서사를 만나고 싶어서인 것 같다.“청년팔이에 많이 시달리며 사회에 섞이지 않으려는 예술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집단(무엇이든)에서 경제나 사업에 묶이지 않고, 순수하게 예술로만 모여 갈피를 못 잡아 흔들림이 요즘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김준기(좌) 지누아리 촬영을 위한 영상 워크숍 (우) 지누아리의 이야기를 노래로 ⓒ 강릉 무엇이든우리 사회에서 청년이란 사회적 이슈와 문제 또는 공공지원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가고 있다. 지원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의 서사를 만들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살피는 것에는 여전히 무지하고 인색하다. 이미 정해진 듯한 삶의 조건에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사소한 진정성’은 그들의 짧은 아포리즘 속에 충분하게 묻어 있다.“별거 없는 이야기라고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써야만 하는 이유였다. 지누아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지누아리가 되어가는 중이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고기은그거 별거 없는 이야기야, 그거 쓸모가 없는 시도야. 해봐야 할 질문과 시도들이 ‘번듯한 생존’을 요구하는 타자의 시선들에게 날치기를 당한다.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아마도 이런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한 공공적 관심과 응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명을 모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찾고 싶은가요’라고 묻는다. ‘세련된 콘텐츠를 개발하세요’라고 요구하지 않고 ‘촌스러운 과정을 만들어보세요’라고 응원한다.“나는 종이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흑백의 나비를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고 흐릿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나를 들여다보고 이것들이 나의 노래가 되는 것, 우리의 길의 끝에 이것이 있었으면 좋겠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박희진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주식회사 섬도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생존의 시간, 실존의 시간생존의 시간 속에는 상상도, 바라봄도, 돌아봄도, 노래와 시(詩)가 쉬어갈 자리가 없다. ‘숨’ 같은 자리가 없으니 자꾸 다른 것들로 채우려 한다.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실존의 시간 속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빛이 나고, 나의 사진이 언어가 되고, 나의 노래가 서사가 된다.영월 물무리골 숲에서 마을 속 멜로디 찾기 ⓒ 살롱더스트링“마음속에서 내 음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계속 내 마음을 탐색하면서 조금씩 발견했던 음악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나를 관통하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어떨 때 그것은 검은 안개로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며, 햇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리로도 다가오며 투명한  빛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주변에 많은 존재들은 셀 수없이 많은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이야기를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변선희일상도 삶도 해치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고 만지면서 살아가야 행복하다. 자신이 서 있는 동네도 마을도 마주치고 찾아가고 만지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아야 하며, 미래를 위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의 과정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활동을 하면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바라볼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함께 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더 깊게 관찰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손병남10년 넘게 컨설턴터, 협력기획자, 멘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현장을 만나고 청년을 만나고 있지만 아직도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만남을 멈추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늘 변함이 없다. 사업비를 지원했으니 사업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끌어가야 할 당연한 명분이 우선이었다면 이미 힘을 잃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이유와 근거를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었기에 청년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다.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사업들과 행정은 뗄 수 없는 관계라 생각했다. 고리타분하기도 한 지역의 관료들의 비위에 맞춰 사업을 하다보니 억지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문화우리 사업을 하며 개인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창의적인 사업을 하다보니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다. 남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 우리가 하고 싶은 과정을 그리는 게 훨씬 보람 있고 값진 일이라 생각이 들어 모든 활동이 흥미롭게 느껴진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최종혁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관악책방연합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문화가 있는 날’에서 ‘서사가 있는 날’로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흘깃 들어오는 파란 하늘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는가? 새롭거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질문과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살랑이는 바람이며, 그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이며, 그 사이로 피어나는 파란 하늘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와 서사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생존과 실존을 애써 분리할 필요도 없다. 생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실존을 발견해가고, 실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생존을 연결해볼 수 있다면 나의 서사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동네에서 일상포착 ⓒ 앤컴퍼니‘나라를 구하겠다’는 식의 과장된 언어 사용과 비현실적인 사업 목표 설정, 그리고 제공자 중심의 콘텐츠는 아무리 다시 봐도 타인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나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이 사업을 통해서 진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그리고 이 사업 이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본질에 대해서 다시 정직하게 질문해보았다. 그리고 벌써부터 사업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은 뒤 진심으로 눈물이 나왔다. 국가지원금이라는 압박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었다는 부담감, 사업은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언제부터 자리 잡았을까?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부터? 이 프로젝트를 처음 지원했을 때부터? 아니, 지역에서의 활동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순간부터인지 모르겠다.그렇게 멘토링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동안 나를 방해하고 있던 필요 이상의 모든 걱정들을 이제는 흘려보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시간의 멘토링은 우리들의 사업 계획서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나의 태도도 보완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앤컴퍼니’ 청년 윤태현남해 ‘카카카’ 무인도영화제 현장 스케치 ⓒ 지역문화진흥원3년째 흘러가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축제나 문화행사(공연) 중심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으로 엮이면서 본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뜻한 소통과 접촉을 놓지 않으며 당사자로서 삶과 문화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다. 성과나 결과보다는 진정성에 마음을 두며 ‘공모사업의 반전’을 시도했던 ‘지역문화우리’ 사업의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벗어 버리고 서로의 힘과 가능성을 모아갈 수 있는 ‘전환’으로서 ‘문화가 있는 날’이 아닌 ‘서사 있는 날’은 어떨까?그동안 청년들의 서사를 응원했다면, 이제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서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문화진흥원이 서사의 주체가 되어 청년의 다양한 서사들에 반응하고 그 사서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의 성찰과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심한기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홈페이지  바로가기품청소년문화공동체 홈페이지 바로가기사진ⓒ 시사IN 백승기  

2021.10.02

청년, 문제인가 존재인가생각하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한 언어들로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내일은 그 공허함까지도 가물가물해질 것 같다. 익숙한 편리함들이 빠르게 스쳐가는 시간에게 몸을 맡긴 듯하다. 그래서인가. 그것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한 시간의 삶, 하루의 삶을 귀하게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잘 안 보인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서사(narrative)들이 잘 안 보인다. 2019년부터 지역문화진흥원과 함께 ‘지역문화우리’ 청년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도 잘 보이지 않는 서사를 만나고 싶어서인 것 같다.“청년팔이에 많이 시달리며 사회에 섞이지 않으려는 예술가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집단(무엇이든)에서 경제나 사업에 묶이지 않고, 순수하게 예술로만 모여 갈피를 못 잡아 흔들림이 요즘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김준기(좌) 지누아리 촬영을 위한 영상 워크숍 (우) 지누아리의 이야기를 노래로 ⓒ 강릉 무엇이든우리 사회에서 청년이란 사회적 이슈와 문제 또는 공공지원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가고 있다. 지원의 대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삶의 서사를 만들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살피는 것에는 여전히 무지하고 인색하다. 이미 정해진 듯한 삶의 조건에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청년들의 ‘사소한 진정성’은 그들의 짧은 아포리즘 속에 충분하게 묻어 있다.“별거 없는 이야기라고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써야만 하는 이유였다. 지누아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지누아리가 되어가는 중이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단체 ‘무엇이든’ 청년 고기은그거 별거 없는 이야기야, 그거 쓸모가 없는 시도야. 해봐야 할 질문과 시도들이 ‘번듯한 생존’을 요구하는 타자의 시선들에게 날치기를 당한다.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아마도 이런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한 공공적 관심과 응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명을 모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고, ‘무엇을 찾고 싶은가요’라고 묻는다. ‘세련된 콘텐츠를 개발하세요’라고 요구하지 않고 ‘촌스러운 과정을 만들어보세요’라고 응원한다.“나는 종이에 희미하게 느껴지는 흑백의 나비를 상상하며 그려보았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고 흐릿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나를 들여다보고 이것들이 나의 노래가 되는 것, 우리의 길의 끝에 이것이 있었으면 좋겠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박희진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주식회사 섬도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생존의 시간, 실존의 시간생존의 시간 속에는 상상도, 바라봄도, 돌아봄도, 노래와 시(詩)가 쉬어갈 자리가 없다. ‘숨’ 같은 자리가 없으니 자꾸 다른 것들로 채우려 한다.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실존의 시간 속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빛이 나고, 나의 사진이 언어가 되고, 나의 노래가 서사가 된다.영월 물무리골 숲에서 마을 속 멜로디 찾기 ⓒ 살롱더스트링“마음속에서 내 음악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계속 내 마음을 탐색하면서 조금씩 발견했던 음악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나를 관통하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어떨 때 그것은 검은 안개로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며, 햇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리로도 다가오며 투명한  빛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주변에 많은 존재들은 셀 수없이 많은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이야기를 마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살롱더스트링’ 청년 변선희일상도 삶도 해치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고 만지면서 살아가야 행복하다. 자신이 서 있는 동네도 마을도 마주치고 찾아가고 만지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아야 하며, 미래를 위함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의 과정 자체가 행복해야 한다.활동을 하면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바라볼지 계속 고민이 되었다. 함께 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더 깊게 관찰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손병남10년 넘게 컨설턴터, 협력기획자, 멘토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현장을 만나고 청년을 만나고 있지만 아직도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만남을 멈추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늘 변함이 없다. 사업비를 지원했으니 사업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끌어가야 할 당연한 명분이 우선이었다면 이미 힘을 잃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삶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이유와 근거를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었기에 청년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즐겁다.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사업들과 행정은 뗄 수 없는 관계라 생각했다. 고리타분하기도 한 지역의 관료들의 비위에 맞춰 사업을 하다보니 억지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문화우리 사업을 하며 개인의 역량이 중요시되는 창의적인 사업을 하다보니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었다. 남들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 우리가 하고 싶은 과정을 그리는 게 훨씬 보람 있고 값진 일이라 생각이 들어 모든 활동이 흥미롭게 느껴진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무엇이든’ 청년 최종혁지역문화우리 참여 단체 관악책방연합 활동 모습 ⓒ 지역문화진흥원‘문화가 있는 날’에서 ‘서사가 있는 날’로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흘깃 들어오는 파란 하늘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는가? 새롭거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질문과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살랑이는 바람이며, 그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이며, 그 사이로 피어나는 파란 하늘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와 서사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생존과 실존을 애써 분리할 필요도 없다. 생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실존을 발견해가고, 실존의 시간 속에서 나의 생존을 연결해볼 수 있다면 나의 서사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동네에서 일상포착 ⓒ 앤컴퍼니‘나라를 구하겠다’는 식의 과장된 언어 사용과 비현실적인 사업 목표 설정, 그리고 제공자 중심의 콘텐츠는 아무리 다시 봐도 타인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나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이 사업을 통해서 진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걸까? 그리고 이 사업 이후에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본질에 대해서 다시 정직하게 질문해보았다. 그리고 벌써부터 사업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은 뒤 진심으로 눈물이 나왔다. 국가지원금이라는 압박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되었다는 부담감, 사업은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언제부터 자리 잡았을까? 사업에 선정되고 나서부터? 이 프로젝트를 처음 지원했을 때부터? 아니, 지역에서의 활동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순간부터인지 모르겠다.그렇게 멘토링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그동안 나를 방해하고 있던 필요 이상의 모든 걱정들을 이제는 흘려보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시간의 멘토링은 우리들의 사업 계획서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나의 태도도 보완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_ 2021 지역문화우리 사업 단체 ‘앤컴퍼니’ 청년 윤태현남해 ‘카카카’ 무인도영화제 현장 스케치 ⓒ 지역문화진흥원3년째 흘러가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축제나 문화행사(공연) 중심의 ‘문화가 있는 날’ 사업으로 엮이면서 본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따뜻한 소통과 접촉을 놓지 않으며 당사자로서 삶과 문화를 찾아갈 수 있는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다. 성과나 결과보다는 진정성에 마음을 두며 ‘공모사업의 반전’을 시도했던 ‘지역문화우리’ 사업의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벗어 버리고 서로의 힘과 가능성을 모아갈 수 있는 ‘전환’으로서 ‘문화가 있는 날’이 아닌 ‘서사 있는 날’은 어떨까?그동안 청년들의 서사를 응원했다면, 이제는 지역문화진흥원의 서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문화진흥원이 서사의 주체가 되어 청년의 다양한 서사들에 반응하고 그 사서들을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의 성찰과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심한기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홈페이지  바로가기품청소년문화공동체 홈페이지 바로가기사진ⓒ 시사IN 백승기  

2021.10.02
[2020.06]예술순환로 웹진 믿미_비현실성의 현실성 그리고 반(反) 작용

 비현실성의 현실성 그리고 반(反)작용심한기 현실이란 무엇인가?정신의학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정신이상(psychotic), 즉 일상적인 유지가 안 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노이로제(neurotic, 신경증으로 분류한다)이다. 이 둘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현실성”이다. 현실이란 같은 시공간(here & now)에서 경험하는 현상으로, 사회적인 약속과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 사회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점은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과거에는 비정상이며 비현실적이었던 것들이 시대나 문화적 변화에 따라 당연한 현실로 변환되기도 한다. 결국, 불변하는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의심해봐야 한다. 현실성은 사회 또는 특정 세대나 집단의 권력(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담론이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현실과 비현실을 규정하려는 태도나 인식을 자주 흔들어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현실 또는 정상적인 것에 기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 호기심, 열망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지루한 일상을 깨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비현실과 비정상에 근거한 시도이다. 이런 태도와 시도는 기존의 관성, 관습, 기득권 등을 얕잡아볼 수 있는 발칙한 용기로 진화하기도 한다. 코로나 19 상황을 겪으면서 뉴노멀(new normal), 메타(meta), 메타버스(Metaverse),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Z세대) 등의 단어들이 익숙해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과 함께, 잊고 살았던 것, 또는 비현실적이란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 세계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속도감이다. 옆을 보지 않고 경제성장에 목숨을 걸며 달려왔던 ‘압축적 근대화’의 경험은 삶의 속도감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새롭거나 다른 것, 즉 비현실이라 여겼던 것들에 대한 관찰, 이해, 해석, 적용의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었다. 빠른 것에 익숙해지기에 당장 활용이 가능한 기능과 기술에 집착하게 된다. 소통의 방식과 기술은 늘어나지만, 소통의 깊이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스스로 인식하거나 해석할 수 있는 문해력(literacy)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새로운 편견과 배제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비현실을 현실로 초대하거나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진화로 표현될 수 있는 토대로서의 질문이나 해석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빠른 속도로 가상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고, 비대면의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성찰하기 위한 질문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타(meta), 즉 추상이나 가상의 세계도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유무형의 산물이기에 우리의 해석과 선택은 자유로울 수 있다. 메타(meta)를 추상이나 가상의 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세계로 해석해보자.저 너머는 추상과 가상의 뜻을 포함하지만, 해 보지 않은 것, 관심 없었던 것, 정반대의 것, 있는데 보고 있지 못하는 것 등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일상에서 내가 잘 모르는 것, 관심 없는 것,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초대는 비현실이 되며,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면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된다. 문명과 기술이 알아서 먹여주는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아닌 내가 찾아가고 판단하고 행위할 수 있는 비현실성의 현실성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보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이나 비현실에 반(反)할 수 있는 작용이 필요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데이터는 보통 무시하고 예외로 따로 넣어두고 끝낸다. 세상은 그 데이터를 벗어난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反)데이터를 만드는 일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다. 지배 데이터를 벗어나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데이터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사회의 시선을 새롭게 만드는 기본 데이터가 되길 희망한다.1] 가상세계는 정보와 데이터의 세계이기도 하다. 빅데이터나 알고리즘은 이미 나의 스마트폰에도 작동하며 기특한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정보나 데이터를 소비하거나 따라가는 것에 반(反)할 수 있는,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저 너머의 반(反)-작용’은 또 다른 비현실성의 현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유를 기반한 인문주의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화장의 기술과 같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이미 개념과 이론이 되어버린 사상이나 철학을 반복하고 인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반-작용, 즉 ‘확실성’, ‘절대성’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마구 던질 수 있는 ‘반-작용’이 필요하다. 메타, 가상, 비현실성에 대한 나의 스토리텔링은 결국 본질적 낭만으로 회귀하고 있다. [ 아침에 이러나서 밭에 가 보면  꼬치 피고 파란 잎이 팔랑팔랑하는데  너도 나를 보고, 나도 저를 보고  얼마나 사랑서럼고 감사한지 몰라요. / 칠곡 할머니 송문자. 할매들의 글에는 문자가 인간에게 주는 환상이 없고, 인간의 문자와 문장 안에 이미 들어와서 완강하게 자리잡은 관념이나 추상이 들어있지 않다. 할매들의 글은 삶을 뒤따라가면서 추스른다. 자라는 것들을 길러서 자라게 하는 일상의 노동에서 할매들은 삶의 고난을 감당해내는 마음의 힘을 키워왔다. 할매들은 생명을 가꾸고 키움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긍정했고, 작은 소출을 귀하게 여겼다.2] 이는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삶의 본질과 지향점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스마트한 디지털 세계와 땡볕에 피어난 도라지꽃을 탐하는 낭만의 세계는 공존한다. 지금의 비현실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흐름에 따르거나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삶의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 너머’의 것들을 호명하며 스스로 그러한 반(反)-작용을 꿈꿔보는 비현실성의 일상도 현실이 될 만하다.1김월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반데이터의 예술”, 『와리즈아트What Is Art 결과자료집』,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1-02), p.242김훈,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2019), p.266심한기청소년들과 함께 스스로 가능한 주체적 문화와 삶을 만들어가는 독립단체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의 대표로 장기집권하다가 현재는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서울시에서 위탁을 받은 ‘서울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센터장으로 살고 있다.E-mail.gooddogcho@hanmail.net 

2021.06.26

 비현실성의 현실성 그리고 반(反)작용심한기 현실이란 무엇인가?정신의학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정신이상(psychotic), 즉 일상적인 유지가 안 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노이로제(neurotic, 신경증으로 분류한다)이다. 이 둘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현실성”이다. 현실이란 같은 시공간(here & now)에서 경험하는 현상으로, 사회적인 약속과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 사회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점은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과거에는 비정상이며 비현실적이었던 것들이 시대나 문화적 변화에 따라 당연한 현실로 변환되기도 한다. 결국, 불변하는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의심해봐야 한다. 현실성은 사회 또는 특정 세대나 집단의 권력(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담론이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현실과 비현실을 규정하려는 태도나 인식을 자주 흔들어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현실 또는 정상적인 것에 기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 호기심, 열망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지루한 일상을 깨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비현실과 비정상에 근거한 시도이다. 이런 태도와 시도는 기존의 관성, 관습, 기득권 등을 얕잡아볼 수 있는 발칙한 용기로 진화하기도 한다. 코로나 19 상황을 겪으면서 뉴노멀(new normal), 메타(meta), 메타버스(Metaverse),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Z세대) 등의 단어들이 익숙해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과 함께, 잊고 살았던 것, 또는 비현실적이란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 세계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속도감이다. 옆을 보지 않고 경제성장에 목숨을 걸며 달려왔던 ‘압축적 근대화’의 경험은 삶의 속도감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새롭거나 다른 것, 즉 비현실이라 여겼던 것들에 대한 관찰, 이해, 해석, 적용의 과정을 생략하게 만들었다. 빠른 것에 익숙해지기에 당장 활용이 가능한 기능과 기술에 집착하게 된다. 소통의 방식과 기술은 늘어나지만, 소통의 깊이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스스로 인식하거나 해석할 수 있는 문해력(literacy)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새로운 편견과 배제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쯤 되면 비현실을 현실로 초대하거나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진화로 표현될 수 있는 토대로서의 질문이나 해석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빠른 속도로 가상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고, 비대면의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성찰하기 위한 질문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메타(meta), 즉 추상이나 가상의 세계도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이 만들어낸 유무형의 산물이기에 우리의 해석과 선택은 자유로울 수 있다. 메타(meta)를 추상이나 가상의 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세계로 해석해보자.저 너머는 추상과 가상의 뜻을 포함하지만, 해 보지 않은 것, 관심 없었던 것, 정반대의 것, 있는데 보고 있지 못하는 것 등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일상에서 내가 잘 모르는 것, 관심 없는 것,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초대는 비현실이 되며,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면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된다. 문명과 기술이 알아서 먹여주는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아닌 내가 찾아가고 판단하고 행위할 수 있는 비현실성의 현실성의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보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이나 비현실에 반(反)할 수 있는 작용이 필요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데이터는 보통 무시하고 예외로 따로 넣어두고 끝낸다. 세상은 그 데이터를 벗어난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反)데이터를 만드는 일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다. 지배 데이터를 벗어나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데이터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사회의 시선을 새롭게 만드는 기본 데이터가 되길 희망한다.1] 가상세계는 정보와 데이터의 세계이기도 하다. 빅데이터나 알고리즘은 이미 나의 스마트폰에도 작동하며 기특한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정보나 데이터를 소비하거나 따라가는 것에 반(反)할 수 있는, 이상하지만 매력적인 ‘저 너머의 반(反)-작용’은 또 다른 비현실성의 현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유를 기반한 인문주의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화장의 기술과 같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이미 개념과 이론이 되어버린 사상이나 철학을 반복하고 인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반-작용, 즉 ‘확실성’, ‘절대성’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마구 던질 수 있는 ‘반-작용’이 필요하다. 메타, 가상, 비현실성에 대한 나의 스토리텔링은 결국 본질적 낭만으로 회귀하고 있다. [ 아침에 이러나서 밭에 가 보면  꼬치 피고 파란 잎이 팔랑팔랑하는데  너도 나를 보고, 나도 저를 보고  얼마나 사랑서럼고 감사한지 몰라요. / 칠곡 할머니 송문자. 할매들의 글에는 문자가 인간에게 주는 환상이 없고, 인간의 문자와 문장 안에 이미 들어와서 완강하게 자리잡은 관념이나 추상이 들어있지 않다. 할매들의 글은 삶을 뒤따라가면서 추스른다. 자라는 것들을 길러서 자라게 하는 일상의 노동에서 할매들은 삶의 고난을 감당해내는 마음의 힘을 키워왔다. 할매들은 생명을 가꾸고 키움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긍정했고, 작은 소출을 귀하게 여겼다.2] 이는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삶의 본질과 지향점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스마트한 디지털 세계와 땡볕에 피어난 도라지꽃을 탐하는 낭만의 세계는 공존한다. 지금의 비현실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흐름에 따르거나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삶의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 너머’의 것들을 호명하며 스스로 그러한 반(反)-작용을 꿈꿔보는 비현실성의 일상도 현실이 될 만하다.1김월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반데이터의 예술”, 『와리즈아트What Is Art 결과자료집』,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2021-02), p.242김훈,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2019), p.266심한기청소년들과 함께 스스로 가능한 주체적 문화와 삶을 만들어가는 독립단체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의 대표로 장기집권하다가 현재는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서울시에서 위탁을 받은 ‘서울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센터장으로 살고 있다.E-mail.gooddogcho@hanmail.net 

2021.06.26
[2020.05]<서울마을이야기>_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공공적 역할과 공유지로서의 가능성

   정책안테나ㅣ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공공적 역할과 공유지로서의 가능성 청소년을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호명하며 마을배움터의 공공성에 대한 재해석과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공공적 역할과 공유지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우이 역에서 북한산 오르는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다 보면 코끝 가득 맛있게 빵 굽는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간 벽돌의 눈에 띄는 건물이 보인다. 지붕에는 아이가 하늘을 맑게 쳐다보고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정거장을 연상케 하는 간판만이 어렴풋하게 건물의 정체성을 말해 준다. 연면적 100평쯤 되는 7개의 공간을 갖춘 이곳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조례(제27조)에 의해 추진된 제1호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이다.                       ▲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전면                                  ▲ 지붕 위 하늘을 보는 아이상 (作노시은)      # 공공시설 맞아요? 서울시에서 위탁 운영 하는 곳이니 공공시설이 맞다. 그러나 딱딱한 공공시설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이 묻는다. "공공시설 맞아요?" 대부분 공공시설(위탁시설)은 다 지은 공간에 위탁단체가 들어가지만 '숨'은 위탁단체인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과정을 함께 만들어갔다. 효율과 동선을 고려하기 보다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순간순간 발길을 멈추고 서로가 부딪히고 마주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설계도 바꾸기를 여러 번, 완공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필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서울시 지역공동체담당관 공동체 공간 조성팀 도움 덕분이었다. 공간을 운영할 '품'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며 물심양면 함께 했다. 협약의 관계에서도 서울시는 갑과 을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서 협력을 약속했다. 사람들은 이런 '숨'의 사례에 반응하고 호응했다. 2019년 9월 개관한 '숨'은 2020년 1월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로 선정되었다. 기존 방식을 넘어선 '숨'의 탄생이 위탁시설이 담고자 하는 꿈과 이상을 관과 잘 협력하여 만들어 나가는 공공성의 좋은 사례가 되기를 바랐다.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 선정 ▶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집> 보러가기 마을배움터 완공 전, 지역의 각계 단체들은 물론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마을배움터 설치의 필요성과 역할, 운영 방향 그리고 기존 공공시설의 획일적 공간구조를 넘어선 창의적인 공간 설치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해당 내용들은 설계팀에 전달되었다. (사례집 본문 중)                                                             # '숨'은 그러면 뭐하는 곳인가요?- 기초단위 중심의 마을배움 거점을 넘어 : 권권역단위 마을배움 거점으로의 역할 마을사업 내에서 실천과 교류의 범주가 자꾸 축소된다. 현재 동 단위 마을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당면한 삶의 문제를 당사자가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동 단위의 실천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마을의 거점들이 자치구 중심이다. 더불어 광역 중심이다. 그 빈틈사이(권역)를 연결할 무언가 필요하다. '숨'은 동북권역 내 존재하는 교육시설과 단체, 다양한 사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배움을 연결하고 지원한다.- 청소년, 마을에서의 단순 참여를 넘어 : 마을의 주체, 배움의 주체로 청소년 호명하기마을에 대한 인식 정도와 관계없이 청소년들은 마을 속에서 영향 받으며 살아간다.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처음으로 만나는 세상이기에 이 시기 마을에 대한 경험은 청소년들이 사회를 인식하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말처럼 마을은 청소년에게 자신의 배움과 성장을 실천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무대인 것 이다. 청소년에게 마을이 중요한 이유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례 주체의 대부분은 삼사십대의 주민들 - 주부, 활동가, 예술가 - 이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며 공간을 조성하고 마을 교육과 동아리 활동을 만든다. 여기에 청소년은 많지 않다. 청소년이 마을 활동의 전면적 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잠재적 청년이자 마을의 주체로 성장할 씨앗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는다면 청소년들에게 마을활동에 참여하고 기여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숨'은 청소년을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호명하여 그들이 마을에서 존재 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마련해 가려 한다. ▲ 2020년 12월 숨에서 진행한 청소년들의 비대면 축제 ‘십개판’ (유튜브로 송출)청소년들이 1년간 해왔던 활동을 공유하고, '숨'의 심한기센터장과 '민들레'잡지 장희숙편집장이 청소년 한명한명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 청소년을 만나는 마을배움 활동가, 단순 실천을 넘어 스스로의 성장을 꿈꾸고 지역 간의 만남을 꿈꾸기학교의 시스템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마을이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각종 마을교육 사업들이 등장했고, 그 연결 선상에 활동가들도 양적으로 많아졌다. 지역은 활동가에게 사업을 해내는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쉼과 성장에 대한 고민보다 역량 강화 교육에 힘을 쏟았다. 때문에 자기 지역과 실천을 벗어나 상상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청소년이 마을의 주체, 배움의 주체로 호명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가들이 먼저 자기 삶의 주체로 서야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 - '숨'의 근거 있는 자신감 '숨'의 위탁 단체인 '품'은 시스템과 공공성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과 활동을 위해 많은 위탁제안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늘 지속가능한 안정성에 대한 어려움과 아쉬움은 있었는데 '마을이-학교'를 진행하며 공공성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공이랑 이름 아래에서도 자율    과 낭만을 잃지 않고, 어려운 조건과 환경으로 지치지 않고, '품'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와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품'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숨'을 위탁받게 됐다.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공공시설, 공공영역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응원과 격려가 더 많았다. 공간, 사업과 운영, 사람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시도를 만들고 싶었다. '숨'의 3년 역사는 '품'의 29년 역사와 연결되는 힘이 있다.  '품'이 29년간 축적한 힘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마을배움터로 집중되고 있다.    마을이-학교는? 2015년 ~ 2017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의 마을상생프로젝트로 강북에서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삼각산 재미난마을,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숭곡중학교, 삼각산고등학교가 '품'과 협업하여 마을 중심으로 배움을 고민하자고 만들어낸 사업이다.   # '숨'이 품는 꿈 - 새로운 공공성의 좋은 사례로써 확장되기   거버넌스는 '(키를)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mam에서 왔다. 즉 정부가 혼자 키를 잡지 않고 시민 사회와 키를 나눠 잡는 역할 분담을 통해 정부와 시민 사회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형태가 아니라 보다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 또는 네트워크 관계로 운영  - 공공성, 하승우 -  '숨'과 서울시 지역공동체담당관 공동체공간조성팀은 키를 나눠잡고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앞으로도 서울시와 키를 함께 잡고 공공이라 규정지어진 것들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공공성의 사례로 확장되어 갈 수 있는 꿈을 꾸려 한다.  <서울특별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운영 위·수탁 협약서>"본 협약서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와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 사이의 권리, 의무, 협력관계 등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서울시"와 "품"은 상호협력 및 동반자 정신에 입각하여 서울시에서 최초로 조성하는 마을배움터를 원활히 운영하고 마을배움터 운영의 수범사례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고 상호 협력을 통한 민관협치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나가며 상호 신뢰를 제고할 수 있도록 한다."  - 청소년이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사례와 가능성 만들어 내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자리와 위치는 어디일까? '숨'이 늘 고민하는 것이다. 다양함이 부딪히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공간에서 스스로 배움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청소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숨'은 그들의 자리와 위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공유지가 아닌, 감각의 공유지로 존재하기 '숨'은 공간을 받은 위탁시설로써 서비스만 제공하는 곳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신나는 마을배움 공유지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 서로의 가치와 태도, 감각, 성장 등이 공유되는 공유지로 존재하길 꿈꾼다. 추상적일 수 있는 감각의 공유지를 만들어가며, 이를 언어화해서 공유하려 한다.- 추상적 언어를 객관화 하기 '숨'이 많이 받는 피드백 중 하나가 너무 추상적인 언어로 해석되어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오니 서로 소통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다. 연구 사업을 통해 내•외부 논의를 통해 추상적 언어를 객관적 언어로 만들어 가보려 한다. 아직 4년차에 100평 남짓 공간에 6명의 활동가각 전부이지만, '숨'은 늘 꿈꾼다. 물리적 공간은 작지만, 실천 공간은 작지 않다. 늘 공공의 경계를 흔들고자 한다. 경계의 흔들림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공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숨'은 넓은 품으로 꿈을 꾼다.    글·사진_문성희(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 팀장)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발행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 102호(2021.5.7)  

2021.06.26

   정책안테나ㅣ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공공적 역할과 공유지로서의 가능성 청소년을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호명하며 마을배움터의 공공성에 대한 재해석과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의 공공적 역할과 공유지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우이 역에서 북한산 오르는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다 보면 코끝 가득 맛있게 빵 굽는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간 벽돌의 눈에 띄는 건물이 보인다. 지붕에는 아이가 하늘을 맑게 쳐다보고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에 정거장을 연상케 하는 간판만이 어렴풋하게 건물의 정체성을 말해 준다. 연면적 100평쯤 되는 7개의 공간을 갖춘 이곳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조례(제27조)에 의해 추진된 제1호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이다.                       ▲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전면                                  ▲ 지붕 위 하늘을 보는 아이상 (作노시은)      # 공공시설 맞아요? 서울시에서 위탁 운영 하는 곳이니 공공시설이 맞다. 그러나 딱딱한 공공시설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이 묻는다. "공공시설 맞아요?" 대부분 공공시설(위탁시설)은 다 지은 공간에 위탁단체가 들어가지만 '숨'은 위탁단체인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과정을 함께 만들어갔다. 효율과 동선을 고려하기 보다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순간순간 발길을 멈추고 서로가 부딪히고 마주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설계도 바꾸기를 여러 번, 완공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필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서울시 지역공동체담당관 공동체 공간 조성팀 도움 덕분이었다. 공간을 운영할 '품'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며 물심양면 함께 했다. 협약의 관계에서도 서울시는 갑과 을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서 협력을 약속했다. 사람들은 이런 '숨'의 사례에 반응하고 호응했다. 2019년 9월 개관한 '숨'은 2020년 1월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로 선정되었다. 기존 방식을 넘어선 '숨'의 탄생이 위탁시설이 담고자 하는 꿈과 이상을 관과 잘 협력하여 만들어 나가는 공공성의 좋은 사례가 되기를 바랐다.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 선정 ▶ <생활 SOC 지역참여 선도사례집> 보러가기 마을배움터 완공 전, 지역의 각계 단체들은 물론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마을배움터 설치의 필요성과 역할, 운영 방향 그리고 기존 공공시설의 획일적 공간구조를 넘어선 창의적인 공간 설치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해당 내용들은 설계팀에 전달되었다. (사례집 본문 중)                                                             # '숨'은 그러면 뭐하는 곳인가요?- 기초단위 중심의 마을배움 거점을 넘어 : 권권역단위 마을배움 거점으로의 역할 마을사업 내에서 실천과 교류의 범주가 자꾸 축소된다. 현재 동 단위 마을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당면한 삶의 문제를 당사자가 해결한다는 의미에서 동 단위의 실천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마을의 거점들이 자치구 중심이다. 더불어 광역 중심이다. 그 빈틈사이(권역)를 연결할 무언가 필요하다. '숨'은 동북권역 내 존재하는 교육시설과 단체, 다양한 사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배움을 연결하고 지원한다.- 청소년, 마을에서의 단순 참여를 넘어 : 마을의 주체, 배움의 주체로 청소년 호명하기마을에 대한 인식 정도와 관계없이 청소년들은 마을 속에서 영향 받으며 살아간다.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처음으로 만나는 세상이기에 이 시기 마을에 대한 경험은 청소년들이 사회를 인식하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말처럼 마을은 청소년에게 자신의 배움과 성장을 실천해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무대인 것 이다. 청소년에게 마을이 중요한 이유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례 주체의 대부분은 삼사십대의 주민들 - 주부, 활동가, 예술가 - 이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며 공간을 조성하고 마을 교육과 동아리 활동을 만든다. 여기에 청소년은 많지 않다. 청소년이 마을 활동의 전면적 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잠재적 청년이자 마을의 주체로 성장할 씨앗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는다면 청소년들에게 마을활동에 참여하고 기여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숨'은 청소년을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호명하여 그들이 마을에서 존재 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마련해 가려 한다. ▲ 2020년 12월 숨에서 진행한 청소년들의 비대면 축제 ‘십개판’ (유튜브로 송출)청소년들이 1년간 해왔던 활동을 공유하고, '숨'의 심한기센터장과 '민들레'잡지 장희숙편집장이 청소년 한명한명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 청소년을 만나는 마을배움 활동가, 단순 실천을 넘어 스스로의 성장을 꿈꾸고 지역 간의 만남을 꿈꾸기학교의 시스템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마을이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각종 마을교육 사업들이 등장했고, 그 연결 선상에 활동가들도 양적으로 많아졌다. 지역은 활동가에게 사업을 해내는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며 쉼과 성장에 대한 고민보다 역량 강화 교육에 힘을 쏟았다. 때문에 자기 지역과 실천을 벗어나 상상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청소년이 마을의 주체, 배움의 주체로 호명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가들이 먼저 자기 삶의 주체로 서야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 - '숨'의 근거 있는 자신감 '숨'의 위탁 단체인 '품'은 시스템과 공공성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과 활동을 위해 많은 위탁제안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늘 지속가능한 안정성에 대한 어려움과 아쉬움은 있었는데 '마을이-학교'를 진행하며 공공성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공이랑 이름 아래에서도 자율    과 낭만을 잃지 않고, 어려운 조건과 환경으로 지치지 않고, '품'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와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품'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고 '숨'을 위탁받게 됐다.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공공시설, 공공영역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응원과 격려가 더 많았다. 공간, 사업과 운영, 사람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시도를 만들고 싶었다. '숨'의 3년 역사는 '품'의 29년 역사와 연결되는 힘이 있다.  '품'이 29년간 축적한 힘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마을배움터로 집중되고 있다.    마을이-학교는? 2015년 ~ 2017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의 마을상생프로젝트로 강북에서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 삼각산 재미난마을, 열린사회북부시민회, 숭곡중학교, 삼각산고등학교가 '품'과 협업하여 마을 중심으로 배움을 고민하자고 만들어낸 사업이다.   # '숨'이 품는 꿈 - 새로운 공공성의 좋은 사례로써 확장되기   거버넌스는 '(키를) 조종하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kubermam에서 왔다. 즉 정부가 혼자 키를 잡지 않고 시민 사회와 키를 나눠 잡는 역할 분담을 통해 정부와 시민 사회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형태가 아니라 보다 수평적인 파트너 관계 또는 네트워크 관계로 운영  - 공공성, 하승우 -  '숨'과 서울시 지역공동체담당관 공동체공간조성팀은 키를 나눠잡고 서로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앞으로도 서울시와 키를 함께 잡고 공공이라 규정지어진 것들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공공성의 사례로 확장되어 갈 수 있는 꿈을 꾸려 한다.  <서울특별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운영 위·수탁 협약서>"본 협약서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서울특별시와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 사이의 권리, 의무, 협력관계 등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서울시"와 "품"은 상호협력 및 동반자 정신에 입각하여 서울시에서 최초로 조성하는 마을배움터를 원활히 운영하고 마을배움터 운영의 수범사례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고 상호 협력을 통한 민관협치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나가며 상호 신뢰를 제고할 수 있도록 한다."  - 청소년이 마을과 배움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사례와 가능성 만들어 내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자리와 위치는 어디일까? '숨'이 늘 고민하는 것이다. 다양함이 부딪히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공간에서 스스로 배움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청소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숨'은 그들의 자리와 위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 -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공유지가 아닌, 감각의 공유지로 존재하기 '숨'은 공간을 받은 위탁시설로써 서비스만 제공하는 곳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신나는 마을배움 공유지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 서로의 가치와 태도, 감각, 성장 등이 공유되는 공유지로 존재하길 꿈꾼다. 추상적일 수 있는 감각의 공유지를 만들어가며, 이를 언어화해서 공유하려 한다.- 추상적 언어를 객관화 하기 '숨'이 많이 받는 피드백 중 하나가 너무 추상적인 언어로 해석되어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오니 서로 소통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다. 연구 사업을 통해 내•외부 논의를 통해 추상적 언어를 객관적 언어로 만들어 가보려 한다. 아직 4년차에 100평 남짓 공간에 6명의 활동가각 전부이지만, '숨'은 늘 꿈꾼다. 물리적 공간은 작지만, 실천 공간은 작지 않다. 늘 공공의 경계를 흔들고자 한다. 경계의 흔들림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공은 또 다른 새로움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숨'은 넓은 품으로 꿈을 꾼다.    글·사진_문성희(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 팀장)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발행서울시 마을공동체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야기> vol. 102호(2021.5.7)  

2021.06.26
[2020.04] arte365_"꾸밈없는 질문과 성찰이 방향을 만든다" -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김세영 _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말과 기록은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항상 고민하게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여러 작업자와 협업함에도, 기획을 했다는 이유 혹은 언어화에 좀 더 능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쓰고 말할 권력이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발화가 작업 전반을 대표할 때, 필연적으로 비약이 일어난다. 함께 한 이들의 존재, 다른 감각과 해석, 다음 방향에 대한 제안까지, 구구절절 적어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체가 합의한 문장이 아니기에 검열이 늘어난다. 낱말 하나하나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의 기록은 29년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꼼꼼하고 진솔하다. 표현은 대담하고 그때그때의 고민을 거침없이 적는다. 품이 위탁 운영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 1호 마을배움터이기에 더욱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숨의 홈페이지에, 공간 곳곳에 담겨있다. 품을 통과한 언어가 투명하게 숨을 보여준다.진심 어린 나의 기록으로부터품은 활동 초부터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전달’에 집중했다. 전달은 보여주는 것이고 읽는 이의 평가를 수반한다. 기획단계에서 오류가 생기고 진행 과정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대로 적기란 쉽지 않다. 문장이 가공되는 만큼 글은 과장된다. 그러기를 20여 년. 기록이 쌓일 만큼 쌓여서일까, 질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한기 품 대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는 “나의 기록이 쌓여야 진짜 공유될 수 있는 공공의 아카이빙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나의 기록이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이 어렵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정직하게 쓰는 글이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기 전에, 자신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품은 사업기획안 하나를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기 글을 쓰고 나눈다. 진행하기도 전에 지치지는 않을까 싶지만, 기획에 대한 자기 의심과 상상, 두려움과 설렘을 토로하다 보면 지구력과 애정도가 되레 상승한다고 말한다. 사업 하나에 들이는 공이 상당하기에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없다. 경영평가를 받으면 낙제일 것이라는 심한기 대표의 웃음 뒤로 진심과 정성이라는 단어가 지나간다.자신을 적어가는 시도는 사업기획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숨의 활동가들은 아침이면 SNS로 인사와 일과를 나누고, 퇴근할 때는 ‘업무 일기’를 공유한다. 한나절의 질문과 발견, 기분 등이 담긴 일기는 서로를 살피는 터가 된다. ‘주간 나눔’ ‘달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다. 이따금 수다만으로 해가 저물기도 하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 이 시간만큼은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살뜰하게 알아가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숨에서는 활동가뿐 아니라, 참여하는 이들도 자기 기록을 남기고 나눈다. 물론 ‘말’이라는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 있지만, 발화자와 수신자의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이해하려는 마음은 곧잘 미끄러진다. 때론 실제보다 아름답거나 비참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글은 말 사이에 숨은 삶의 자잘한 소리, 침묵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옹기가 된다. 진심 어린 기록을 마주한 활동가가 감히 무엇을 미화하거나 미워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어떠한가?’ 되물을 뿐이다. 품의 기록이 정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물론 심한기 대표의 말처럼, 기록 행위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 ‘나의 기록’이 정직하려면 ‘환대’가 필수적이다.  마을배움터 숨 ‘아카이빙’[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 2019 십만원프로젝트 Story telling Book1[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스스로 그러한’ 존중과 환대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기록집 「품을 품은 사람들」을 보면 여러 참여자가 환대란 무엇인지를 전한다.  “품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줬어.”“판단이나 평가 없이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줬어.”“그렇게 매일 가서 라면만 먹고 오는데도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질문과 응원,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환영과 환대는 다르다. 환대의 기본 단위는 오롯이 한 개인이다. 상대방의 위치나 말, 태도와 상관없이, 무기력한 대로 다혈질인 대로 회의적인 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대의 대상은 집단이 될 수 없다. 성격별로 취향별로 그룹화해서 공식처럼 대할 수도 없다. 환대가 학교나 학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자,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이다. 품은 초창기부터 자리를 열 때 가능하면 다섯 명에서 열 명 규모를 고집한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또한 기획하는 곳곳마다 빈자리를 꼭 남겨둔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한두 개의 빈자리는 초대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잘 짜면 안 된다”라고 심한기 대표는 말한다.가령 숨에서 진행하는 ‘십만원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하고 싶은 작업을 스스로 찾는 프로젝트이다. 십만 원으로 시작해서 매해 십만 원씩 프로젝트 지원금이 올라가는데, 최대 5년까지 연장 지원한다. 이제 3년 차이지만, 50만 원을 지원할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가득하다. ‘십만원 프로젝트’에는 숨의 활동가 전원이 참여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조언자가 아닌, 질문하고 고민을 나누며 힘을 실어주는 환대자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유의 삶과 스타일을 담아낸다. 오르내리는 감정에 대해 단편영화를 찍고, 자해를 성찰하며, 인권에 대해 사유하는 등 열 개가 넘는 프로젝트 속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동북4구 활동가들과 진행한 ‘여행학교 숨’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사업 안에서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한기 대표는 “첫 모임을 수다 자리로 준비했을 뿐”이라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울까. 모인 이들이 멈출 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약속된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럴듯한 여행 계획안은 나오지 않는다. 기획자로서 아찔한 순간이지 않을까. 하지만 숨은 집요한 과정 설계를 경계한다. 촘촘한 설계 뒤에 기획자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불안은 시간과 과정에 대한 권력을 쥐게 하고, 참여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품 역시 기획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렇기에 ‘self-so’(스스로 그러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입에 달게 된 것은, 어쩌면 자기 실천을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기획단계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논의했던 것은, 이토록 실행 과정을 비워놓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코로나19 속에서도 ‘여행학교 숨’은 기어코 또 다른 채비를 할 수 있던 것 아닐까. 십만원 프로젝트 중간 공유회만남의 본질은 서사다작년, 코로나19는 일상을 정지시켰다. 수많은 공간이 버티다 못해 문을 닫았고, 숨 홈페이지에도 ‘배움터 운영 중단’이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숨의 ‘별의별짓’ 소식은 여전히 공유되었고 내용 또한 풍성했다. 유튜브 채널에는 양질의 강의와 포럼, 청소년들의 영상이 자주 업로드되었다. 팬데믹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품은 어떻게 대안을 찾은 걸까?마을배움터 곳곳을 소개해주던 활동가는 “온라인 만남이 기괴하고 우울했던 것은 우리도 매한가지”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잠시 중단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확진자 수는 점점 늘었고,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흔든 건 불현듯 돌아온 ‘판’(별명)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품을 만났다가 예술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갔다. 한동안 방송국 피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다가 막 프리랜서로 전향한 그는 숨의 활동가들에게 ‘뉴노멀’에 대해 전했다.“디지털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도구이다. 줌(Zoom)은 15년 전 할리우드 영화 속 회의 매체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모든 만남이 온택트여야 하는 극단적 상황은 괴롭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에서 살고 있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는 강렬했다. 과학에 대한 터부시와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다시 사유하게 했다. 숨은 장비를 샀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판과 함께 첫 번째 비대면 포럼 <교육에 묻는다>를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아날로그 방식 그대로 진행하면서 송출만 디지털로 해봤는데, 대면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포럼 중간중간 실시간 소통이 이뤄졌다. 영등포에서, 제주도에서 질문이 건너왔다. 장소 제약은 문지방만큼 낮았고 그마저도 아카이빙이 해소해주었다. 나 역시 방송이 끝난 한참 후에 포럼을 시청했다. 디지털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접속이 가능하면서도 공유와 동시에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후로 축제 ‘10개(開)판’에 이르기까지, 품의 29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만남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비대면 만남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갔다.우리 사회는 갑작스럽게 만남의 전환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현장성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각은 살아있기를 바라며 A부터 Z, 그 이상의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감응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이 닿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면 사회가 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심한기 대표는 “전환의 시대를 건너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사”이며 “황금비율의 핵심은 스토리”라고 말한다. 비대면 이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쌓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만나는 이들을 살뜰히 챙겼던가. 필요하다면 전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던가. 기획의 이유는 끊임없이 물었던가. 왜 이 시간을 꾸리고 만남을 이어가는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혹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던가. “기술은 도구이고 매체다. 목표가 되면 그 안에 갇히고 만다.” 비대면이라고 해서 만남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황금비율도 마찬가지이다. 때에 따라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디지털을 아날로그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아날로그만을 고집해야 하고, 디지털만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황금비율이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모인 이와 전하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만남의 그릇이다. 서사가 쌓이고 스토리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숨은 자신들의 황금비율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비대면 시대가 무섭지 않다며 미소 짓는다. 10開판 ‘십대셰프학교의 온라인 식당’[영상출처] 마을배움터 유튜브  비대면 청소년 축제 ‘10開판’[영상출처] 마을배움터 유튜브새로운 시대로 이끌 현장의 담론지금껏 문화예술인들은 정체성 인정으로, 아티스트 페이로, 계약조건과 복지 이슈로 나름의 투쟁을 해왔다. 때마다 사업 담당자에게 호소하기도, 작은 테이블로 모여 작당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문화예술계는 와르르 무너졌다. 생존의 위기는 이어지고, 사람 잃은 예술은 시대의 동요 속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표정 있는 얼굴들의 이야기를 모아낼 자리가 절실하다.“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다. 현실을 쫓고 정책을 쫓다가 정말 중요한 건 잃을 것이다. 최대한 여럿이, 최대한 긴 호흡으로 현장의 언어를 모아가야 할 때다. 우선은 이 시기에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문화’와 ‘예술’이 왜 합쳐져서 쓰이고 있는지부터 다시 묻고 정리하려 한다.” 심한기 대표에게 담론이란 “경험과 이론을 근거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내세우는 목소리”다. 지금껏 담론은 연구자와 교수들이 형성해왔다. 자연히 경험보다는 이론에 비중이 실렸다. 문제는 언어의 차이였다. 경험과 이론의 언어 차이는 형용사와 명사만큼이나 컸다. 자잘하고 소중한 이야기는 도표 속에 정리되면서 잘려나갔다. 지지고 볶는 세월은 현장의 것인데 마침표는 다른 이가 찍는 셈이었다. 그 목소리가 정책에 깃들 리 만무했다.그래서 숨은 현장의 담론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왜’를 집요하게 파고들 심산이다. 그래야 시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점에서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을 터다. 시대적 변화와 요구 속에서 본질을 점검해야 다음 방향을 합의하고 정책으로 내밀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동북4구의 활동가들이 모여 ‘담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전국의 ‘마을, 문화예술, 교육’ 관련 활동가를 모으고 현장과 함께 언어를 구축해갈 연구자를 물색하고 있다.전환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자기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환대를 지나 기획 권력과 개별성으로,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기 기록으로 회귀했다. 전환이 “이전 것을 고민하며 다음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라면, 이전 것을 고민하기 위해 자기 기록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 기록이 유의미하려면 스스럼없는 질문과 정직한 성찰이 담겨야 한다. 그것을 준거로 다음을 이어가야 새로움 속에서 쓸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시도할 것과 타협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우리 작업실에 돌아와 ‘작업일기’ 파일을 만들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새 습관 들이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심한기 대표가 마지막까지 얘기한 ‘공공의 아카이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마다, 이슈마다 변하는 활동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의 서사에 가깝다. 현실과 지향 사이의 비루한 고백, 자잘하지만 절절한 자기 의심, 그럼에도 계속해가는 별것 아닌 이유들의 들쭉날쭉한 서사. “객관적이기만 하면 피곤하고 주관적이기만 하면 헛헛하다”는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보이는 기록과 보이지 않는 기록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겠다.김세영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목2동에서 나고 자란지 한참인데, 잘 누비고 제대로 발 딛기는 오 년 정도 되었다. 제 꼴대로, 제멋대로 살아도 되는 문화를 그리며 동네에서 이런저런 기획을 하고 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골칫거리를 만들겠다며 끙끙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웃기고 또 소중하다.plusminus1c@naver.com        

2021.04.07

       김세영 _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말과 기록은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를 항상 고민하게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여러 작업자와 협업함에도, 기획을 했다는 이유 혹은 언어화에 좀 더 능하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쓰고 말할 권력이 자주 주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발화가 작업 전반을 대표할 때, 필연적으로 비약이 일어난다. 함께 한 이들의 존재, 다른 감각과 해석, 다음 방향에 대한 제안까지, 구구절절 적어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체가 합의한 문장이 아니기에 검열이 늘어난다. 낱말 하나하나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의 기록은 29년이 쌓였음에도 여전히 꼼꼼하고 진솔하다. 표현은 대담하고 그때그때의 고민을 거침없이 적는다. 품이 위탁 운영하는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이하 ‘숨’)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 1호 마을배움터이기에 더욱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숨의 홈페이지에, 공간 곳곳에 담겨있다. 품을 통과한 언어가 투명하게 숨을 보여준다.진심 어린 나의 기록으로부터품은 활동 초부터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전달’에 집중했다. 전달은 보여주는 것이고 읽는 이의 평가를 수반한다. 기획단계에서 오류가 생기고 진행 과정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대로 적기란 쉽지 않다. 문장이 가공되는 만큼 글은 과장된다. 그러기를 20여 년. 기록이 쌓일 만큼 쌓여서일까, 질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심한기 품 대표(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는 “나의 기록이 쌓여야 진짜 공유될 수 있는 공공의 아카이빙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나의 기록이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이 어렵고, 무엇을 희망하는지’ 정직하게 쓰는 글이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기 전에, 자신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품은 사업기획안 하나를 쓰기 위해 몇 번이고 자기 글을 쓰고 나눈다. 진행하기도 전에 지치지는 않을까 싶지만, 기획에 대한 자기 의심과 상상, 두려움과 설렘을 토로하다 보면 지구력과 애정도가 되레 상승한다고 말한다. 사업 하나에 들이는 공이 상당하기에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을 수도 없다. 경영평가를 받으면 낙제일 것이라는 심한기 대표의 웃음 뒤로 진심과 정성이라는 단어가 지나간다.자신을 적어가는 시도는 사업기획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숨의 활동가들은 아침이면 SNS로 인사와 일과를 나누고, 퇴근할 때는 ‘업무 일기’를 공유한다. 한나절의 질문과 발견, 기분 등이 담긴 일기는 서로를 살피는 터가 된다. ‘주간 나눔’ ‘달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다. 이따금 수다만으로 해가 저물기도 하지만, 바쁜 업무 속에서 이 시간만큼은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살뜰하게 알아가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숨에서는 활동가뿐 아니라, 참여하는 이들도 자기 기록을 남기고 나눈다. 물론 ‘말’이라는 효율적인 소통 수단이 있지만, 발화자와 수신자의 언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이해하려는 마음은 곧잘 미끄러진다. 때론 실제보다 아름답거나 비참한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글은 말 사이에 숨은 삶의 자잘한 소리, 침묵에 담긴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옹기가 된다. 진심 어린 기록을 마주한 활동가가 감히 무엇을 미화하거나 미워할 수 있을까. 그저 ‘나는 어떠한가?’ 되물을 뿐이다. 품의 기록이 정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물론 심한기 대표의 말처럼, 기록 행위 자체에 집착하게 되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다. ‘나의 기록’이 정직하려면 ‘환대’가 필수적이다.  마을배움터 숨 ‘아카이빙’[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 2019 십만원프로젝트 Story telling Book1[이미지출처] 마을배움터 숨 홈페이지‘스스로 그러한’ 존중과 환대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기록집 「품을 품은 사람들」을 보면 여러 참여자가 환대란 무엇인지를 전한다.  “품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줬어.”“판단이나 평가 없이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줬어.”“그렇게 매일 가서 라면만 먹고 오는데도 선생님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질문과 응원,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환영과 환대는 다르다. 환대의 기본 단위는 오롯이 한 개인이다. 상대방의 위치나 말, 태도와 상관없이, 무기력한 대로 다혈질인 대로 회의적인 대로,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대의 대상은 집단이 될 수 없다. 성격별로 취향별로 그룹화해서 공식처럼 대할 수도 없다. 환대가 학교나 학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자,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이다. 품은 초창기부터 자리를 열 때 가능하면 다섯 명에서 열 명 규모를 고집한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다. 또한 기획하는 곳곳마다 빈자리를 꼭 남겨둔다. 머뭇거리는 이에게 한두 개의 빈자리는 초대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잘 짜면 안 된다”라고 심한기 대표는 말한다.가령 숨에서 진행하는 ‘십만원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하고 싶은 작업을 스스로 찾는 프로젝트이다. 십만 원으로 시작해서 매해 십만 원씩 프로젝트 지원금이 올라가는데, 최대 5년까지 연장 지원한다. 이제 3년 차이지만, 50만 원을 지원할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가득하다. ‘십만원 프로젝트’에는 숨의 활동가 전원이 참여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조언자가 아닌, 질문하고 고민을 나누며 힘을 실어주는 환대자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사유를 놓치지 않는다. 고유의 삶과 스타일을 담아낸다. 오르내리는 감정에 대해 단편영화를 찍고, 자해를 성찰하며, 인권에 대해 사유하는 등 열 개가 넘는 프로젝트 속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동북4구 활동가들과 진행한 ‘여행학교 숨’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사업 안에서 지쳐있는 활동가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한기 대표는 “첫 모임을 수다 자리로 준비했을 뿐”이라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울까. 모인 이들이 멈출 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약속된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럴듯한 여행 계획안은 나오지 않는다. 기획자로서 아찔한 순간이지 않을까. 하지만 숨은 집요한 과정 설계를 경계한다. 촘촘한 설계 뒤에 기획자의 불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불안은 시간과 과정에 대한 권력을 쥐게 하고, 참여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품 역시 기획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렇기에 ‘self-so’(스스로 그러한 태도)를 좌우명처럼 입에 달게 된 것은, 어쩌면 자기 실천을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기획단계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논의했던 것은, 이토록 실행 과정을 비워놓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코로나19 속에서도 ‘여행학교 숨’은 기어코 또 다른 채비를 할 수 있던 것 아닐까. 십만원 프로젝트 중간 공유회만남의 본질은 서사다작년, 코로나19는 일상을 정지시켰다. 수많은 공간이 버티다 못해 문을 닫았고, 숨 홈페이지에도 ‘배움터 운영 중단’이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숨의 ‘별의별짓’ 소식은 여전히 공유되었고 내용 또한 풍성했다. 유튜브 채널에는 양질의 강의와 포럼, 청소년들의 영상이 자주 업로드되었다. 팬데믹 상황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품은 어떻게 대안을 찾은 걸까?마을배움터 곳곳을 소개해주던 활동가는 “온라인 만남이 기괴하고 우울했던 것은 우리도 매한가지”였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잠시 중단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확진자 수는 점점 늘었고,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흔든 건 불현듯 돌아온 ‘판’(별명)이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 품을 만났다가 예술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갔다. 한동안 방송국 피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을 보내다가 막 프리랜서로 전향한 그는 숨의 활동가들에게 ‘뉴노멀’에 대해 전했다.“디지털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할 수 있는 도구이다. 줌(Zoom)은 15년 전 할리우드 영화 속 회의 매체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모든 만남이 온택트여야 하는 극단적 상황은 괴롭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의 절반 이상을 온라인에서 살고 있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는 강렬했다. 과학에 대한 터부시와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다시 사유하게 했다. 숨은 장비를 샀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판과 함께 첫 번째 비대면 포럼 <교육에 묻는다>를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아날로그 방식 그대로 진행하면서 송출만 디지털로 해봤는데, 대면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포럼 중간중간 실시간 소통이 이뤄졌다. 영등포에서, 제주도에서 질문이 건너왔다. 장소 제약은 문지방만큼 낮았고 그마저도 아카이빙이 해소해주었다. 나 역시 방송이 끝난 한참 후에 포럼을 시청했다. 디지털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한 접속이 가능하면서도 공유와 동시에 기록이 이루어졌다. 이후로 축제 ‘10개(開)판’에 이르기까지, 품의 29년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만남을 실험하고 시도하며 비대면 만남을 준비할 때 꼭 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를 발견해갔다.우리 사회는 갑작스럽게 만남의 전환기를 맞았다. 예술가들은 현장성이 사라진 자리에도 감각은 살아있기를 바라며 A부터 Z, 그 이상의 품을 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감응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이 닿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면 사회가 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심한기 대표는 “전환의 시대를 건너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사”이며 “황금비율의 핵심은 스토리”라고 말한다. 비대면 이전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쌓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만나는 이들을 살뜰히 챙겼던가. 필요하다면 전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던가. 기획의 이유는 끊임없이 물었던가. 왜 이 시간을 꾸리고 만남을 이어가는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않았다면, 혹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던가. “기술은 도구이고 매체다. 목표가 되면 그 안에 갇히고 만다.” 비대면이라고 해서 만남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황금비율도 마찬가지이다. 때에 따라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가져오기도 하고, 반대로 디지털을 아날로그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아날로그만을 고집해야 하고, 디지털만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황금비율이란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모인 이와 전하는 이야기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만남의 그릇이다. 서사가 쌓이고 스토리가 표현되는 방식이다. 숨은 자신들의 황금비율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비대면 시대가 무섭지 않다며 미소 짓는다. 10開판 ‘십대셰프학교의 온라인 식당’[영상출처] 마을배움터 유튜브  비대면 청소년 축제 ‘10開판’[영상출처] 마을배움터 유튜브새로운 시대로 이끌 현장의 담론지금껏 문화예술인들은 정체성 인정으로, 아티스트 페이로, 계약조건과 복지 이슈로 나름의 투쟁을 해왔다. 때마다 사업 담당자에게 호소하기도, 작은 테이블로 모여 작당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문화예술계는 와르르 무너졌다. 생존의 위기는 이어지고, 사람 잃은 예술은 시대의 동요 속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표정 있는 얼굴들의 이야기를 모아낼 자리가 절실하다.“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다. 현실을 쫓고 정책을 쫓다가 정말 중요한 건 잃을 것이다. 최대한 여럿이, 최대한 긴 호흡으로 현장의 언어를 모아가야 할 때다. 우선은 이 시기에 ‘문화’가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문화’와 ‘예술’이 왜 합쳐져서 쓰이고 있는지부터 다시 묻고 정리하려 한다.” 심한기 대표에게 담론이란 “경험과 이론을 근거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내세우는 목소리”다. 지금껏 담론은 연구자와 교수들이 형성해왔다. 자연히 경험보다는 이론에 비중이 실렸다. 문제는 언어의 차이였다. 경험과 이론의 언어 차이는 형용사와 명사만큼이나 컸다. 자잘하고 소중한 이야기는 도표 속에 정리되면서 잘려나갔다. 지지고 볶는 세월은 현장의 것인데 마침표는 다른 이가 찍는 셈이었다. 그 목소리가 정책에 깃들 리 만무했다.그래서 숨은 현장의 담론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왜’를 집요하게 파고들 심산이다. 그래야 시대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기점에서 ‘우리가 지금껏 무엇을 했는지,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을 터다. 시대적 변화와 요구 속에서 본질을 점검해야 다음 방향을 합의하고 정책으로 내밀 수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동북4구의 활동가들이 모여 ‘담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전국의 ‘마을, 문화예술, 교육’ 관련 활동가를 모으고 현장과 함께 언어를 구축해갈 연구자를 물색하고 있다.전환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자기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환대를 지나 기획 권력과 개별성으로, 담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기 기록으로 회귀했다. 전환이 “이전 것을 고민하며 다음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이라면, 이전 것을 고민하기 위해 자기 기록을 들여다봐야 한다. 자기 기록이 유의미하려면 스스럼없는 질문과 정직한 성찰이 담겨야 한다. 그것을 준거로 다음을 이어가야 새로움 속에서 쓸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취할 것과 버릴 것, 시도할 것과 타협하지 않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우리 작업실에 돌아와 ‘작업일기’ 파일을 만들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새 습관 들이기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심한기 대표가 마지막까지 얘기한 ‘공공의 아카이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해마다, 이슈마다 변하는 활동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의 서사에 가깝다. 현실과 지향 사이의 비루한 고백, 자잘하지만 절절한 자기 의심, 그럼에도 계속해가는 별것 아닌 이유들의 들쭉날쭉한 서사. “객관적이기만 하면 피곤하고 주관적이기만 하면 헛헛하다”는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보이는 기록과 보이지 않는 기록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겠다.김세영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목2동에서 나고 자란지 한참인데, 잘 누비고 제대로 발 딛기는 오 년 정도 되었다. 제 꼴대로, 제멋대로 살아도 되는 문화를 그리며 동네에서 이런저런 기획을 하고 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골칫거리를 만들겠다며 끙끙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웃기고 또 소중하다.plusminus1c@naver.com        

2021.04.07
[2020.11] 드렌파(drenpa) : 지금 우리가 ‘자각’해야 할 것들.

 

2020.11.13

 

2020.11.13
십대들의 식당

 

2020.11.12

 

2020.11.12
지금, 다시, 질문하기

2020.11.07

2020.11.07
[2020.10] 공모사업의 반전(反轉)

 

2020.10.23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