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해석
[2020.08] 문화기획과 환대 ‘기획되지 않은 본능으로서의 환대’

  심한기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 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0.08.14

  심한기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센터장) 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0.08.14
[2020.05] ARTE365_"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예술교육_멈춤에 대한 희망-깨어나기 위한 질문"

 멈추면 무엇이 보일까?티베트어로 드렌파(drenpa)는 ‘대상이나 조건, 상황을 자각하다. 또는 깨어있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를 발견하는 대신 살아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각이나 깨어있음이 가능하려면 기억하고 돌아보기를 위한 자발적 멈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그리고 원하지 않는 ‘멈춤’의 상황에 서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지구적 멈춤이 진행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역설들이 감지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이 멈추자 도시의 공기는 깨끗해졌고, 감시가 느슨해진 틈으로 아마존의 숲은 망가져 가고 있다. 유럽연합은 흔들리고 있고, 미국은 총기 사재기로 역설적 호황을 맞고 있고, 가난한 이들의 현실은 비참한 절규로 변환되고 있다.지나온 20여 년 동안 세계 경제 위기, 변종 바이러스, 기후 위기 등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만나면서 비상식적인 현실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있었지만,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극복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당연히 있었던 것들이 만져지지 않고 사라져가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자발적 멈춤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간을 다시 ‘자각하고 깨어나기’를 위한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와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봄꽃나눔 행사의 일환으로 코로나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인근 식당, 카페 등과     택배 아저씨, 국화빵 사장님에게 응원의 꽃을 나누었다.예술은 교육의 틀을 해체할 수 있을까?학교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학원의 불빛은 찬란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두려움만큼 학업과 입시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보통의 상황에서도 부족했던 쌍방향의 수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예술가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시작되었고 정부, 지자체, 문화재단 등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지원들이 제시되고 있는 중이다.지금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함께 ‘기억과 과거의 현재성’을 고려한 본질적 질문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멈춰있는 지금 교육 그리고 예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시도해봐야 한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멈춤이 없이 달려왔고, 나름의 변화와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자기 질문’을 축적할 수 있는 여백은 충분하지 못했다. 예술은 근대적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교육을 해체할 수 있는 본질적 에너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교육의 시스템과 환경 속에 갇혀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기증식과 생존을 위한 진화만이 남을 듯하다.‘경험의 내면화’라는 말이 있다. 일시적 또는 자극적 체험이나 사유가 없는 경험의 반복을 넘어서 개인의 언어와 행위로 깊숙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을 말한다. 한번 해본 기억으로서의 경험 또는 기능적 성취의 경험을 넘어서 삶 속의 인식과 감각을 통합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경험의 내면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수업’이라는 틀 또는 ‘교육’이라는 틀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타인, 생존과 실존, 수업과 일상과 같은 구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십대들의 실패와 시도를 응원하는 ‘십만원 프로젝트’ 공유회사라져 가는 질문, 질문하기 위한 질문3,4년 전만 해도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요구에서 벗어나려는 자발적 청소년, 비현실적 상상과 호기심으로 용감한 모험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질 만큼 ‘생존을 위한 자발적 복종’에 익숙하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축제를 기획하고 꽹과리와 장구를 쳤던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딴짓을 할 기회는 더 많아졌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한다. 틈틈이 시도하는 딴짓에서도 먹고 살 방식을 연결하거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서슴없이 포기한다. 가장 비현실적이며 비구상의 일상을 경험하고 시도해봐야 할 시점에 아이들 스스로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다.예술 또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자책이 아닌 지금 이 시대, 즉 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예술,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쉽게 종료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개인과 국가를 넘어서는 지구적 문제와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과학, 경제, 정치, 교육, 예술 등에 대한 분과적 구분을 넘어서야 하고 문화와 예술 속에서 잔재하는 획일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이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은 지속가능한 삶의 기술과 지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와 수학 이외에 잉여시간을 채워가는 부분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 민주시민으로, 지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소우주와도 같으며 우리 각자 대우주에서 일어나는 문제 또는 진화를 함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드렌파(drenpa)’ – 깨어있으려면 멈춰봐야 한다.아이들에게 질문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먼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사진 _ 필자 제공 심한기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처] ARTE365_http://arte365.kr/?p=79141    

2020.06.11

 멈추면 무엇이 보일까?티베트어로 드렌파(drenpa)는 ‘대상이나 조건, 상황을 자각하다. 또는 깨어있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를 발견하는 대신 살아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각이나 깨어있음이 가능하려면 기억하고 돌아보기를 위한 자발적 멈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그리고 원하지 않는 ‘멈춤’의 상황에 서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지구적 멈춤이 진행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역설들이 감지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이 멈추자 도시의 공기는 깨끗해졌고, 감시가 느슨해진 틈으로 아마존의 숲은 망가져 가고 있다. 유럽연합은 흔들리고 있고, 미국은 총기 사재기로 역설적 호황을 맞고 있고, 가난한 이들의 현실은 비참한 절규로 변환되고 있다.지나온 20여 년 동안 세계 경제 위기, 변종 바이러스, 기후 위기 등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만나면서 비상식적인 현실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있었지만,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극복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당연히 있었던 것들이 만져지지 않고 사라져가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자발적 멈춤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간을 다시 ‘자각하고 깨어나기’를 위한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와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봄꽃나눔 행사의 일환으로 코로나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인근 식당, 카페 등과     택배 아저씨, 국화빵 사장님에게 응원의 꽃을 나누었다.예술은 교육의 틀을 해체할 수 있을까?학교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학원의 불빛은 찬란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두려움만큼 학업과 입시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보통의 상황에서도 부족했던 쌍방향의 수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예술가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시작되었고 정부, 지자체, 문화재단 등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지원들이 제시되고 있는 중이다.지금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함께 ‘기억과 과거의 현재성’을 고려한 본질적 질문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멈춰있는 지금 교육 그리고 예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시도해봐야 한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멈춤이 없이 달려왔고, 나름의 변화와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자기 질문’을 축적할 수 있는 여백은 충분하지 못했다. 예술은 근대적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교육을 해체할 수 있는 본질적 에너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교육의 시스템과 환경 속에 갇혀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기증식과 생존을 위한 진화만이 남을 듯하다.‘경험의 내면화’라는 말이 있다. 일시적 또는 자극적 체험이나 사유가 없는 경험의 반복을 넘어서 개인의 언어와 행위로 깊숙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을 말한다. 한번 해본 기억으로서의 경험 또는 기능적 성취의 경험을 넘어서 삶 속의 인식과 감각을 통합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경험의 내면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수업’이라는 틀 또는 ‘교육’이라는 틀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타인, 생존과 실존, 수업과 일상과 같은 구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십대들의 실패와 시도를 응원하는 ‘십만원 프로젝트’ 공유회사라져 가는 질문, 질문하기 위한 질문3,4년 전만 해도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요구에서 벗어나려는 자발적 청소년, 비현실적 상상과 호기심으로 용감한 모험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질 만큼 ‘생존을 위한 자발적 복종’에 익숙하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축제를 기획하고 꽹과리와 장구를 쳤던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딴짓을 할 기회는 더 많아졌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한다. 틈틈이 시도하는 딴짓에서도 먹고 살 방식을 연결하거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서슴없이 포기한다. 가장 비현실적이며 비구상의 일상을 경험하고 시도해봐야 할 시점에 아이들 스스로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다.예술 또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자책이 아닌 지금 이 시대, 즉 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예술,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쉽게 종료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개인과 국가를 넘어서는 지구적 문제와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과학, 경제, 정치, 교육, 예술 등에 대한 분과적 구분을 넘어서야 하고 문화와 예술 속에서 잔재하는 획일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이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은 지속가능한 삶의 기술과 지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와 수학 이외에 잉여시간을 채워가는 부분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 민주시민으로, 지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소우주와도 같으며 우리 각자 대우주에서 일어나는 문제 또는 진화를 함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드렌파(drenpa)’ – 깨어있으려면 멈춰봐야 한다.아이들에게 질문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먼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사진 _ 필자 제공 심한기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처] ARTE365_http://arte365.kr/?p=79141    

2020.06.11
[2020.01] 경기문화저널_"돌연변이 그리고 진화 그리고 문화원"

 심 한 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스스로는 변화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고,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이는 대부분의 공공집단이 가질 수 있는 착시현상 또는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다. 특히 오래된 집단일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복제된 사유, 복제된 상상, 복제된 태도와 행위 등이 반복될수록 역동적 돌연변이가 탄생될 확률은 낮아진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으로만 치부되지 않고 그 깊은 소중함을 드러내며 현재적 시점의 언어와 문화와 일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래된 것들의 진화는 지금과 다음을 위한 생존과 공존의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를 위해서는 역동적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좀 오래되었거나 낡은 것 또는 변화가 없는 곳’이라는 보편적 인식의 주인공으로 ‘문화원’이 자주 등장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문화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전통, 향토, 보존과 계승, 어르신 등이다. 이는 문화원의 지향과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의 시점으로는 정지된 또는 역류하는 흐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이든 착시현상이든 간에 문화원 스스로 지켜야 할 것, 변화해야 할 것, 진화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통합적 진단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문화원의 본질을 지켜가면서 변화와 진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으로서 ‘돌변변이의 진화’를 말하고자 한다.품 청소년문화공동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의 역사A라는 독립된 개체가 B를 만나고 충돌하면서 C를 상상하게 하고, A와 C가 결합되어 새로운 D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품은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한국의 사회복지 또는 청소년복지에 대한 염증과 비판으로 뭉쳐진 사회복지 전공자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안교육, 문화와 예술, 마을공동체, 국제개발과 엔지오, 지속가능한 삶 등 다양한 시각과 실천들이 연결되어 마을 속에서 십대와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즉 사유와 실천의 돌연변이 과정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품이 지향하는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 그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은 매우 다양한 접촉과 진화들로 채워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진화의 중심에는 늘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순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와 실천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회적 유성생식 과정에서 진화된 사람의 힘이었다. 늘 하던 생각과 실천에 거대한 바윗돌을 던지는 사람의 힘이 작용하기도 했고, 늘 하던 생각과 실천 속에 있었던 주인공들의 끊임없는 변이과정들이 새로운 힘으로 작용되기도 했다.23살 청소년축제와 연결된 돌연변이의 진화과정십대들이 스스로 꾸려가고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에 집중했던 품은 십대들과 함께 고정된 일상들을 문화적으로 사고하고 해체해볼 수 있는 일탈로서의 축제가 아닌 일상으로서의 청소년축제를 만들어왔다. 올해로 23살이 되는 대한민국 최장수 청소년축제이다. 축제하나만을 보자면 축제만으로 십대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전부가 될 수 없겠지만, 축제를 만들었던 20여 년 동안의 과정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들은 오래된 관성과 습관에 멈추어 있는 품을 흔들었고,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십대들을 흔들었다.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 4-5년째를 넘기면서 축제를 기획하며 일탈과일상을 넘어들었던 십대들이 20대로 넘어서기 시작했고 몇몇의 돌연변이들은 또 다른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십대에게 꿀맛 같은 즐거움이 되었던 문화적 일상들이 모여서 축제가 되고 그곳에서 삶의 주인공이 되었던 십대들이 청년으로 성장하며 전혀 또 다른 방식의 사고와 실험들을 하게 되었고 개인으로서 또는 작은 집단으로서의 서로에게 자극과 희망을 던지며 대물림되는 돌연변이의 계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품이 십대들에게 미리 깔아준 ‘판’들이 흔들거리는 진화를 거듭하며 십대와 청년들의 독립적인 그리고 새로운 ‘판’들이 이어저가고 있다.청소년문화축제 ‘추락’돌연변이의 대물림과 확장은 새로운 접근과 관계의 영역으로도 함께 진화되었다. 일상 속에서 가능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문화적 사고와 실천들은 조금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과정과 관계의 과정들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장르와 영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켜보는 <십대문화 아카데미> 그리고 마을 속에서의 배움과 실험을 위한 <마을마실>, <마을 속 인문학 교실>과 같은 시도들로 확장되어갔다.그리고 이를 집약한 마을 속 대안학교인 ‘무늬만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다. 학교와 품을 왕래했던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의 배움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무늬만학교의 교사는 과거 십대 시절에 활동했던 청년들과 지나온 과정에서 연결된 마을의 주인공들로 채워졌다. 요즘 품에서 놀고 있는 십대들 중에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서 또 다른 삶의 선택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가질 수 있는 막연함과 불안감들을 줄여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들도 함께 늘어가고 있다. 그동안 이어져온 돌연변이의 과정들을 만나보거나 목격했기에 경험에 근거한 판단들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이들을 응원해줄 관계들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추락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활동그 사이 청년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은 변화들을 거듭해갔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십대가 20대의 청년이 되고 다시 30대의 청년이 되어가면서 일상의 문제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생존의 문제들을 개인의 차원이 아닌 청년집단 또는 마을의 차원에서 궁리하면서 작은 연결과 시도들이 시작되었다.사람이 사람을 이어주고,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이어주고, 시도가 또 다른 시도를 이어주는 과정이 반복이 아닌 순환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관계와 네트워크가 진하게 연결되어졌다. 결국 이러한 접촉과 변이의 시간들은 한 집단의 정체성과 방향 등을 끊임없이 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15살, 16살 청소년들에게 몇 가지의 검사(적성검사, 진로검사 등)와 몇 가지의 직업군을 성공사례로 소개하며 먹고 살 것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제안하거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10개월짜리 계약직을 남발하는 지금 <청년 인문실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즐거운 반란과도 같다. 정규직 보장 또는 월 200만원 수준의 급여지급과 같은 달콤한 생존의 약속도 내걸지 않는데도 개인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인문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작은 실험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환호할 줄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 인문실험>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정산이 없는 200만원의 활동 지원금과 성과로 드러나기 힘든 응원과 지지뿐이었다. 서울이나 대도시만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100팀의 청년들이 참여를 했다.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청년 연극배우가 인문을 읽고 나누기를 시작했고, 청년 디자이너가 자본의 도시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청년 작가가 마을 속의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특별하게 뽐낼 것이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일상 속 관찰을 통한 행복한 성찰을 시도했다.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도 인문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청년들의 <혼밥의 인문학적 대안 찾기>, 자본과 개발로 흔들리는 을지로의 시·공간적 역사를 다시 해석해보려는 청년들의 <이공일구 을지로 동네달력 프로젝트>, 찌질한 생존이 아닌 당당한 욕망의 일상을 시도하는 청년들의 <파자마 파티>, 스스로 만들어 낸 의무와 책임과 평가에 대한 저항으로 숨겨진 영혼의 욕망과 다양한 가치를 찾아가는 다중정체성을 탐색하는 청년들, 그 외에도 비혼여성, 평등, 책 읽은 코인 세탁방, 공정여행, 도시농업, 세대교감 등 생존을 넘어서는 실존의 사유, 탐색, 시도와 실험이 유쾌하게 발휘되었다. 청년 프로젝트에 ‘인문’을 조우하니 사유의 힘, 정신의 힘, 성찰의 힘이 드러난다. 그리고 청년만의 고립된 사유와 접촉을 넘어서는 다른 세대와 영역의 교감과 공존이 드러난다.<청년 인문실험>은 ‘돈이 보여야 지원을 한다. 또는 지원을 받으려면 보여지는 결과나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라는 공식을 버렸고, 실제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100팀의 청년들이 조우했던 몇 번의 만남에서는 무거운 불안이나 두려움 또는 타자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생존으로 연결되는 취업설명회와는 다른 세계였고,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기는 기존의 공모사업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또한 <청년 인문실험>에서의 가장 소중한 과정은 일상과 사유와 실험을 담은 기록이었다. 과장된 성과에 집중해야 하는 결과보고서가 아닌 각자의 일상, 사유, 실험이 담긴 개인의 글쓰기는 개인의 실존을 드러내고 공유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저장되었으며 타자와의 진한 교감과 공감을 연결했다.<청년 인문실험>은 공공영역에서의 시도였지만 행정과 시스템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보이는 결과와 성과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으며 실존에 대한 청년들의 동기와 의지와 욕망을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청년을 생존의 문제로 풀어가려 하는 우리사회의 대안적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그래서 문화원은?# 오래된 것들이 다른 것을 만나며 또 다른 유전자를 잉태할 수 있어야 한다.문화원의 본질과 정체성을 소중하게 지켜가면서 새로운 접촉과 시도에 진지한 몰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장르의 결합이나 일시적인 실험이나 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적 변화와 시도가 아닌 ‘세포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원의 이미지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들에 대한 유연한 호기심이 자발적으로 작동되며 긴 호흡의 말 걸기와 손 내밀기를 끊임없이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 내적인 성찰과 통찰 등을 적절하게 성장시켜가며 자유롭게 여행하는 영혼처럼 문화원만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잉태해갈 수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또는 자원의 발굴과 연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이번호의 주제가 ‘적소적재 연결하기’라고 했지만 진정한 적소적재 연결이 가능하려면 괜찮은 사례를 따라가거나 효율적인 방식을 실험해보려는 과감하게 태도를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네트워크, 자원 등의 개념을 다시 해석해봐야 한다. 뿌리 깊은 접촉과 나눔의 과정이 생략된 네트워크와 자원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연기와도 같다. 당장의 효율성과 성과를 잠시 내려놓고 길게 깊게 관계하고 연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도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누군가를 찾아서 연결하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의 시도보다 먼저 스스로 가능한(Self-So) 돌연변이가 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문화원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찾기에 앞서 문화원이 누군가의 자원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경기문화저널_ http://kccfgg.org/webzine/src/webzine_view.php?idx=39&Focus=231 

2020.06.11

 심 한 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스스로는 변화하고 있고, 진화하고 있고,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이는 대부분의 공공집단이 가질 수 있는 착시현상 또는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다. 특히 오래된 집단일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복제된 사유, 복제된 상상, 복제된 태도와 행위 등이 반복될수록 역동적 돌연변이가 탄생될 확률은 낮아진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으로만 치부되지 않고 그 깊은 소중함을 드러내며 현재적 시점의 언어와 문화와 일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래된 것들의 진화는 지금과 다음을 위한 생존과 공존의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진화를 위해서는 역동적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좀 오래되었거나 낡은 것 또는 변화가 없는 곳’이라는 보편적 인식의 주인공으로 ‘문화원’이 자주 등장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문화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전통, 향토, 보존과 계승, 어르신 등이다. 이는 문화원의 지향과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의 시점으로는 정지된 또는 역류하는 흐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이든 착시현상이든 간에 문화원 스스로 지켜야 할 것, 변화해야 할 것, 진화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통합적 진단과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의 기준으로서 문화원의 본질을 지켜가면서 변화와 진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으로서 ‘돌변변이의 진화’를 말하고자 한다.품 청소년문화공동체가 만들어낸 돌연변이의 역사A라는 독립된 개체가 B를 만나고 충돌하면서 C를 상상하게 하고, A와 C가 결합되어 새로운 D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품은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한국의 사회복지 또는 청소년복지에 대한 염증과 비판으로 뭉쳐진 사회복지 전공자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대안교육, 문화와 예술, 마을공동체, 국제개발과 엔지오, 지속가능한 삶 등 다양한 시각과 실천들이 연결되어 마을 속에서 십대와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즉 사유와 실천의 돌연변이 과정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품이 지향하는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 그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은 매우 다양한 접촉과 진화들로 채워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진화의 중심에는 늘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순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와 실천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회적 유성생식 과정에서 진화된 사람의 힘이었다. 늘 하던 생각과 실천에 거대한 바윗돌을 던지는 사람의 힘이 작용하기도 했고, 늘 하던 생각과 실천 속에 있었던 주인공들의 끊임없는 변이과정들이 새로운 힘으로 작용되기도 했다.23살 청소년축제와 연결된 돌연변이의 진화과정십대들이 스스로 꾸려가고 창조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에 집중했던 품은 십대들과 함께 고정된 일상들을 문화적으로 사고하고 해체해볼 수 있는 일탈로서의 축제가 아닌 일상으로서의 청소년축제를 만들어왔다. 올해로 23살이 되는 대한민국 최장수 청소년축제이다. 축제하나만을 보자면 축제만으로 십대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전부가 될 수 없겠지만, 축제를 만들었던 20여 년 동안의 과정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들은 오래된 관성과 습관에 멈추어 있는 품을 흔들었고, 돌연변이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십대들을 흔들었다.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이 4-5년째를 넘기면서 축제를 기획하며 일탈과일상을 넘어들었던 십대들이 20대로 넘어서기 시작했고 몇몇의 돌연변이들은 또 다른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십대에게 꿀맛 같은 즐거움이 되었던 문화적 일상들이 모여서 축제가 되고 그곳에서 삶의 주인공이 되었던 십대들이 청년으로 성장하며 전혀 또 다른 방식의 사고와 실험들을 하게 되었고 개인으로서 또는 작은 집단으로서의 서로에게 자극과 희망을 던지며 대물림되는 돌연변이의 계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품이 십대들에게 미리 깔아준 ‘판’들이 흔들거리는 진화를 거듭하며 십대와 청년들의 독립적인 그리고 새로운 ‘판’들이 이어저가고 있다.청소년문화축제 ‘추락’돌연변이의 대물림과 확장은 새로운 접근과 관계의 영역으로도 함께 진화되었다. 일상 속에서 가능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문화적 사고와 실천들은 조금 더 깊고 넓은 사유의 과정과 관계의 과정들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장르와 영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켜보는 <십대문화 아카데미> 그리고 마을 속에서의 배움과 실험을 위한 <마을마실>, <마을 속 인문학 교실>과 같은 시도들로 확장되어갔다.그리고 이를 집약한 마을 속 대안학교인 ‘무늬만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다. 학교와 품을 왕래했던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의 배움을 선택하기도 했으며, 무늬만학교의 교사는 과거 십대 시절에 활동했던 청년들과 지나온 과정에서 연결된 마을의 주인공들로 채워졌다. 요즘 품에서 놀고 있는 십대들 중에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서 또 다른 삶의 선택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가질 수 있는 막연함과 불안감들을 줄여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들도 함께 늘어가고 있다. 그동안 이어져온 돌연변이의 과정들을 만나보거나 목격했기에 경험에 근거한 판단들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이들을 응원해줄 관계들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추락에서 성장한 청년들의 활동그 사이 청년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은 변화들을 거듭해갔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십대가 20대의 청년이 되고 다시 30대의 청년이 되어가면서 일상의 문제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생존의 문제들을 개인의 차원이 아닌 청년집단 또는 마을의 차원에서 궁리하면서 작은 연결과 시도들이 시작되었다.사람이 사람을 이어주고,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이어주고, 시도가 또 다른 시도를 이어주는 과정이 반복이 아닌 순환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 속에서 수많은 관계와 네트워크가 진하게 연결되어졌다. 결국 이러한 접촉과 변이의 시간들은 한 집단의 정체성과 방향 등을 끊임없이 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15살, 16살 청소년들에게 몇 가지의 검사(적성검사, 진로검사 등)와 몇 가지의 직업군을 성공사례로 소개하며 먹고 살 것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제안하거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10개월짜리 계약직을 남발하는 지금 <청년 인문실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즐거운 반란과도 같다. 정규직 보장 또는 월 200만원 수준의 급여지급과 같은 달콤한 생존의 약속도 내걸지 않는데도 개인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인문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작은 실험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환호할 줄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 인문실험>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정산이 없는 200만원의 활동 지원금과 성과로 드러나기 힘든 응원과 지지뿐이었다. 서울이나 대도시만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100팀의 청년들이 참여를 했다.청년의 돌변변이와 진화 (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청년 연극배우가 인문을 읽고 나누기를 시작했고, 청년 디자이너가 자본의 도시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청년 작가가 마을 속의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특별하게 뽐낼 것이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일상 속 관찰을 통한 행복한 성찰을 시도했다.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도 인문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청년들의 <혼밥의 인문학적 대안 찾기>, 자본과 개발로 흔들리는 을지로의 시·공간적 역사를 다시 해석해보려는 청년들의 <이공일구 을지로 동네달력 프로젝트>, 찌질한 생존이 아닌 당당한 욕망의 일상을 시도하는 청년들의 <파자마 파티>, 스스로 만들어 낸 의무와 책임과 평가에 대한 저항으로 숨겨진 영혼의 욕망과 다양한 가치를 찾아가는 다중정체성을 탐색하는 청년들, 그 외에도 비혼여성, 평등, 책 읽은 코인 세탁방, 공정여행, 도시농업, 세대교감 등 생존을 넘어서는 실존의 사유, 탐색, 시도와 실험이 유쾌하게 발휘되었다. 청년 프로젝트에 ‘인문’을 조우하니 사유의 힘, 정신의 힘, 성찰의 힘이 드러난다. 그리고 청년만의 고립된 사유와 접촉을 넘어서는 다른 세대와 영역의 교감과 공존이 드러난다.<청년 인문실험>은 ‘돈이 보여야 지원을 한다. 또는 지원을 받으려면 보여지는 결과나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라는 공식을 버렸고, 실제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100팀의 청년들이 조우했던 몇 번의 만남에서는 무거운 불안이나 두려움 또는 타자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생존으로 연결되는 취업설명회와는 다른 세계였고,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기는 기존의 공모사업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또한 <청년 인문실험>에서의 가장 소중한 과정은 일상과 사유와 실험을 담은 기록이었다. 과장된 성과에 집중해야 하는 결과보고서가 아닌 각자의 일상, 사유, 실험이 담긴 개인의 글쓰기는 개인의 실존을 드러내고 공유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저장되었으며 타자와의 진한 교감과 공감을 연결했다.<청년 인문실험>은 공공영역에서의 시도였지만 행정과 시스템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보이는 결과와 성과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으며 실존에 대한 청년들의 동기와 의지와 욕망을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청년을 생존의 문제로 풀어가려 하는 우리사회의 대안적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그래서 문화원은?# 오래된 것들이 다른 것을 만나며 또 다른 유전자를 잉태할 수 있어야 한다.문화원의 본질과 정체성을 소중하게 지켜가면서 새로운 접촉과 시도에 진지한 몰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장르의 결합이나 일시적인 실험이나 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적 변화와 시도가 아닌 ‘세포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원의 이미지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들에 대한 유연한 호기심이 자발적으로 작동되며 긴 호흡의 말 걸기와 손 내밀기를 끊임없이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 내적인 성찰과 통찰 등을 적절하게 성장시켜가며 자유롭게 여행하는 영혼처럼 문화원만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잉태해갈 수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또는 자원의 발굴과 연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이번호의 주제가 ‘적소적재 연결하기’라고 했지만 진정한 적소적재 연결이 가능하려면 괜찮은 사례를 따라가거나 효율적인 방식을 실험해보려는 과감하게 태도를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네트워크, 자원 등의 개념을 다시 해석해봐야 한다. 뿌리 깊은 접촉과 나눔의 과정이 생략된 네트워크와 자원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연기와도 같다. 당장의 효율성과 성과를 잠시 내려놓고 길게 깊게 관계하고 연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도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누군가를 찾아서 연결하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의 시도보다 먼저 스스로 가능한(Self-So) 돌연변이가 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문화원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찾기에 앞서 문화원이 누군가의 자원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경기문화저널_ http://kccfgg.org/webzine/src/webzine_view.php?idx=39&Focus=231 

2020.06.11
[2019.03] 민들레_"마을교육, 운동과 사업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2020.06.11

2020.06.11
[2019.02] 웹진 문화관광_"다음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을 위하여"

  

2020.06.06

  

2020.06.06
[2016.06] 강북마을(강북시민협력플랫폼)_"언어에 관한 명상"

 [마을과 나]- '마을과 나'는 강북마을 회원들이 직접 자신의 생각과 활동을 나누는 회원기고입니다.   매월 강북마을 뉴스레터와 마을까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마을과 나' 첫번째 장은 강북마을 회원 심한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가 언어와 사유에 관한 성찰의 글로 열어주셨습니다.     언어에 관한 명상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사유를 근본으로 한 철학사상에 돌은 던진 ‘비슈켄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는 ‘사유’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며 언어의 논리를 강조했다. 하루 종일 말을 멈추지 못하는 일상에서 ‘언어의 논리’를 따지기는 쉽지 않으며 무수히 내던진 말을 기억하기에도 힘들다. 마치 ‘말’이 전부인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늘어가는 말의 양 만큼 논리적이고 솔직한 전달과 교감도 늘어 가야 할 것 같은데 보통은 일방적 전달에 힘을 쏟고 타인과의 교감에는 늘 인색하다. 통신수단의 혁명이 생각과 말의 논리와 진정성을 돕기보다는 빠른 전달을 위한 편리함만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메일이나 각 종 ‘SNS’에서는 앞 뒤 잘라먹고 지금 빨리 전하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달에 대한 답은 늘 한 문장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매일 표현과 전달의 편리성만으로 훈련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유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유 자체가 생략되어가는 일상이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생각에 근거한 언어가 아닌 보기 ‘좋은 표현을 위한 사유’가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주변에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교감의 의도보다는 전달과 주장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 의심해봐야 한다.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만남과 소통들이 진행되고 있고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표현할 수 있는 공론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이쯤에서는 ‘언어에 대한 명상’도 시도해볼만하다. 타고난 말솜씨로 ‘언어의 유희’만을 즐기고 있는 함정에 빠지지는 않고 있는지?, 행동과 실천을 위한 깊은 사유는 줄어가고 당장 획득하고 싶은 동의와 찬성만을 위한 언어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는지?, 타인의 언어와 행동을 책임감 없이 비판만 하는 독설에 포로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은 쉽게 던지고 스스로의 행동에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말을 멈추어 볼 필요가 있다.진짜 명상은 두려움이나 잡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잡념을 내 안으로 초대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언어에 대한 명상’은 생각까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적인 언어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타인의 언어를 다시 읽어내려는 배려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몸을 위한 투자만큼 자신의 언어를 위한 투자도 소중하며 언어에 대한 명상을 위한 최고의 노력은 ‘사유와 표현이 한 몸이 되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벽화를 한번 그리면 공동체의식이 형성된다고 뻥을 치는 공모사업 계획안 말고 자신의 자유와 표현을 위한 글쓰기로 ‘언어에 대한 명상’을 멈추지 않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심한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의 대표이며십대와 청년과 함께 세상과 연결되는당당한 자기 삶의 선택과 실천으로 살아가고 있으며2006년부터 희말라야 네팔에서도 대안적 마을공동체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출처] 강북마을(강북시민협력플랫폼)_ http://cafe.daum.net/gangbuknet 

2020.06.06

 [마을과 나]- '마을과 나'는 강북마을 회원들이 직접 자신의 생각과 활동을 나누는 회원기고입니다.   매월 강북마을 뉴스레터와 마을까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회원님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마을과 나' 첫번째 장은 강북마을 회원 심한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가 언어와 사유에 관한 성찰의 글로 열어주셨습니다.     언어에 관한 명상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사유를 근본으로 한 철학사상에 돌은 던진 ‘비슈켄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는 ‘사유’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며 언어의 논리를 강조했다. 하루 종일 말을 멈추지 못하는 일상에서 ‘언어의 논리’를 따지기는 쉽지 않으며 무수히 내던진 말을 기억하기에도 힘들다. 마치 ‘말’이 전부인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늘어가는 말의 양 만큼 논리적이고 솔직한 전달과 교감도 늘어 가야 할 것 같은데 보통은 일방적 전달에 힘을 쏟고 타인과의 교감에는 늘 인색하다. 통신수단의 혁명이 생각과 말의 논리와 진정성을 돕기보다는 빠른 전달을 위한 편리함만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메일이나 각 종 ‘SNS’에서는 앞 뒤 잘라먹고 지금 빨리 전하고 싶거나 보여주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달에 대한 답은 늘 한 문장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매일 표현과 전달의 편리성만으로 훈련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유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유 자체가 생략되어가는 일상이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생각에 근거한 언어가 아닌 보기 ‘좋은 표현을 위한 사유’가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주변에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이 있다면 교감의 의도보다는 전달과 주장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 의심해봐야 한다.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만남과 소통들이 진행되고 있고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표현할 수 있는 공론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이쯤에서는 ‘언어에 대한 명상’도 시도해볼만하다. 타고난 말솜씨로 ‘언어의 유희’만을 즐기고 있는 함정에 빠지지는 않고 있는지?, 행동과 실천을 위한 깊은 사유는 줄어가고 당장 획득하고 싶은 동의와 찬성만을 위한 언어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는지?, 타인의 언어와 행동을 책임감 없이 비판만 하는 독설에 포로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은 쉽게 던지고 스스로의 행동에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말을 멈추어 볼 필요가 있다.진짜 명상은 두려움이나 잡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잡념을 내 안으로 초대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언어에 대한 명상’은 생각까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적인 언어를 들여다보는 것이며 타인의 언어를 다시 읽어내려는 배려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몸을 위한 투자만큼 자신의 언어를 위한 투자도 소중하며 언어에 대한 명상을 위한 최고의 노력은 ‘사유와 표현이 한 몸이 되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벽화를 한번 그리면 공동체의식이 형성된다고 뻥을 치는 공모사업 계획안 말고 자신의 자유와 표현을 위한 글쓰기로 ‘언어에 대한 명상’을 멈추지 않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심한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의 대표이며십대와 청년과 함께 세상과 연결되는당당한 자기 삶의 선택과 실천으로 살아가고 있으며2006년부터 희말라야 네팔에서도 대안적 마을공동체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출처] 강북마을(강북시민협력플랫폼)_ http://cafe.daum.net/gangbuknet 

2020.06.06
[2015.04] 기분좋은QX_"사람의 순환, 문화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다"

   사람의 순환, 문화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다   아이들을 대하는 ‘청년’ 대상 교육이 진정한 품의 존재 이유아시아 청년 대안대학 만들어 연대하고 가치를 확산하는 꿈      <사진='무늬만 학교'의 수업 현장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교육한다고 들었다. A. 품은 일반 학교처럼 청소년들만을 교육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 즉 교사나 청소년 복지하는 사람, 문화기획자 등이 어떻게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꿈을 지켜줘야 하는지 전달하는 일이 우리의 최종 존재 이유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10년 넘게 청년학교, 문화복지아카데미 등을 진행해왔다. 우리가 1년에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이 100명이라고 할 때, 그 시간에 100명의 실무자나 대학생을 만나면 그 효과가 훨씬 크게 확산되지 않나. 나비효과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 Q. 네팔 사업은 어떻게 시작한 것인가? A. 네팔 사업은 10년째에 접어든다. 서른 몇 살 때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그 전부터 인도를 가고 싶었다. 그때까지 일만 계속 해오다가 처음으로 혼자 외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가슴이 떨려본 적은 처음이다. 인도와 네팔이 붙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네팔에 갔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4박 5일 정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곳은 여행 올 나라가 아니라 살아야 할 나라라고 느꼈다. 여행을 다녀와서 7년 동안 히말라야 가는 꿈만 꿨다. 그리고 이후에 결국 다시 가서 히말라야만 한 달간 여행했다. 그때 네팔에 있는 친구도 사귀고 품 공동체 식구들과 의논하여 네팔에 진출하였다. 한국에서 했던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했다. 네팔에 있던 NGO와 협력하고, 마을에 지원도 나갔다.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같이 살아가면서 교육하고 함께 성장해왔다. 네팔의 청년들이 한국에 와서 품 공동체와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사진=네팔 'Happy School Project'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사진=네팔 '행복한 마을 만들기' 동네 잔치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사진=네팔 '행복한 마을 만들기' 마을 지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그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이 궁금하다. A. 현재 직원은 막내까지 7명이다. 막내는 21살인데 중학교 때부터 품에 왔던 아이다. 나와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책도 냈다. 직원들은 오랫동안 관계 맺어오던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교 때 우리 캠프에 왔던 사람, 중학교 때 온 사람, 대학 때 청년 포럼에 왔다 인연을 맺은 사람, 내가 대학 강의 나가서 알게 되어 자원봉사로 시작한 사람 등 다양하다. 다들 이 동네에 함께 살고, 가족 같다. 고정 직원 외에 청년 자원 봉사자들, 10대 기획자들, 무늬만 학교 친구들, 품 후원하는 주주들 모두 합하면 약 5~600명 될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해왔다. 직원들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난 순간부터 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 나의 아이는 학교 선생님보다 품의 이모 삼촌들을 더 좋아한다. 아이를 같이 키우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나. 그게 품의 문화이다. Q. 예전에 비해 주변의 반응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시나? A. 많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우리도 이렇게 거창한 생각을 안 했다. 막연하게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함께 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성장한 것이다. 계약서를 보면 갑과 을이 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학교에서는 그 관계가 교사와 학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만, 때로 힘들다. 이 관계를 완전히 바꾼다기보다 거기에서 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품은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히피나 아나키스트 같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자유로운 것을 지향한다. 100% 그렇지 못하더라도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재산이다. 품에서 여름마다 초등학생 캠프를 하는데, 품에 참여했거나 품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자녀들만 올 수 있다. 20년 전에 왔던 학생들이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을 또 보내기도 하고, 전에 참여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보조교사로 오고 이런 식으로 사람이 순환한다. 그것이 품의 힘이다.    <사진='무늬만 학교' 입학식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요즘에 ‘공동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개념이 모호하고 막연하게 쓰이는 것 같다.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시도 한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A. 나는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굉장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허상이 많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는 같이 모여서 사는 과거의 공동체 개념은 아니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삶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커뮤니티라면 공동체라고 본다. 물리적·행정적 구역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커뮤니티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자기 중심적으로 개인의 재산과 이익을 증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치있는 것을 꿈꾸고, 그 꿈이 쌓여간다면 그것이 공동체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만화 동아리라면 만화 주제로 정치도 생각해보고. 아프리카의 밥 굶는 아이들도 생각해보고, 교육이 왜 이럴까 고민도 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작업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면, 꼭 프로젝트나 예산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21세기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품은 그러한 방식에서 더 나아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해보니까 참 매력적이다. 이곳(서울 우이동)이 도시이지 않나. 여기도 빈부격차 심하다. 그러나 서로 가까이 살면서 발견하는 희망적인 것들이 있다. 예전처럼 아이들을 같이 키우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정도는 아니지만, 도시의 환경과 상황 속에서 조금씩 함께할 것을 만들어간다면 공동체가 되는 것 같다. 네팔은 한국의 60년대 공동체가 살아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다. 그래서 우리가 네팔에 도움을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자극을 많이 받는다. 문화가 달라도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다 같다.     <사진=품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의 꿈은 무엇인가? A. 네팔 진출을 기점으로 우리의 길을 넓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세계 정세도 살피기 시작했다. 5년 안에 ‘아시아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문화든 예술이든 좋은 일을 하는 청년들을 아시아에서 모아 1년 과정의 대학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고 각자 자신의 나라에 가서 청년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특정 나라에서 분쟁이 생겼다고 하면 같이 가서 돕는 식으로 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제주 강정마을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서양의 평화활동가들이 오는 것처럼 아시아 사람들끼리 더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다. 관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만들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몇 번 바뀌긴 했는데 ^^) ‘아시아 청년 대안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품은 자본을 갖고 시작하지 않는다. ‘무늬만 학교’도 돈 없이 시작했다. 학교를 만들자고 하면 보통 건물부터 지어야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꼭 그렇게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해왔고 그들이 그것을 진리인 줄 아는 것뿐이다.        <사진=품공동체 사무실 현관과 '무늬만 학교' 공간 ⓒyanaci>    정리_by Yanaci[출처] [인터뷰] 사람의 순환, 문화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다 -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2)|작성자 기분좋은QX  

2020.06.06

   사람의 순환, 문화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다   아이들을 대하는 ‘청년’ 대상 교육이 진정한 품의 존재 이유아시아 청년 대안대학 만들어 연대하고 가치를 확산하는 꿈      <사진='무늬만 학교'의 수업 현장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교육한다고 들었다. A. 품은 일반 학교처럼 청소년들만을 교육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 즉 교사나 청소년 복지하는 사람, 문화기획자 등이 어떻게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꿈을 지켜줘야 하는지 전달하는 일이 우리의 최종 존재 이유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10년 넘게 청년학교, 문화복지아카데미 등을 진행해왔다. 우리가 1년에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이 100명이라고 할 때, 그 시간에 100명의 실무자나 대학생을 만나면 그 효과가 훨씬 크게 확산되지 않나. 나비효과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 Q. 네팔 사업은 어떻게 시작한 것인가? A. 네팔 사업은 10년째에 접어든다. 서른 몇 살 때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그 전부터 인도를 가고 싶었다. 그때까지 일만 계속 해오다가 처음으로 혼자 외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가슴이 떨려본 적은 처음이다. 인도와 네팔이 붙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네팔에 갔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4박 5일 정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곳은 여행 올 나라가 아니라 살아야 할 나라라고 느꼈다. 여행을 다녀와서 7년 동안 히말라야 가는 꿈만 꿨다. 그리고 이후에 결국 다시 가서 히말라야만 한 달간 여행했다. 그때 네팔에 있는 친구도 사귀고 품 공동체 식구들과 의논하여 네팔에 진출하였다. 한국에서 했던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 했다. 네팔에 있던 NGO와 협력하고, 마을에 지원도 나갔다.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같이 살아가면서 교육하고 함께 성장해왔다. 네팔의 청년들이 한국에 와서 품 공동체와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사진=네팔 'Happy School Project'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사진=네팔 '행복한 마을 만들기' 동네 잔치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사진=네팔 '행복한 마을 만들기' 마을 지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그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이 궁금하다. A. 현재 직원은 막내까지 7명이다. 막내는 21살인데 중학교 때부터 품에 왔던 아이다. 나와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책도 냈다. 직원들은 오랫동안 관계 맺어오던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교 때 우리 캠프에 왔던 사람, 중학교 때 온 사람, 대학 때 청년 포럼에 왔다 인연을 맺은 사람, 내가 대학 강의 나가서 알게 되어 자원봉사로 시작한 사람 등 다양하다. 다들 이 동네에 함께 살고, 가족 같다. 고정 직원 외에 청년 자원 봉사자들, 10대 기획자들, 무늬만 학교 친구들, 품 후원하는 주주들 모두 합하면 약 5~600명 될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과 같이 해왔다. 직원들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난 순간부터 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지금 나의 아이는 학교 선생님보다 품의 이모 삼촌들을 더 좋아한다. 아이를 같이 키우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나. 그게 품의 문화이다. Q. 예전에 비해 주변의 반응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시나? A. 많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우리도 이렇게 거창한 생각을 안 했다. 막연하게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함께 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성장한 것이다. 계약서를 보면 갑과 을이 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학교에서는 그 관계가 교사와 학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하지만, 때로 힘들다. 이 관계를 완전히 바꾼다기보다 거기에서 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품은 그것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히피나 아나키스트 같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자유로운 것을 지향한다. 100% 그렇지 못하더라도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재산이다. 품에서 여름마다 초등학생 캠프를 하는데, 품에 참여했거나 품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자녀들만 올 수 있다. 20년 전에 왔던 학생들이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을 또 보내기도 하고, 전에 참여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보조교사로 오고 이런 식으로 사람이 순환한다. 그것이 품의 힘이다.    <사진='무늬만 학교' 입학식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요즘에 ‘공동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개념이 모호하고 막연하게 쓰이는 것 같다.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시도 한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A. 나는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공동체는 굉장히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허상이 많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는 같이 모여서 사는 과거의 공동체 개념은 아니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삶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커뮤니티라면 공동체라고 본다. 물리적·행정적 구역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커뮤니티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자기 중심적으로 개인의 재산과 이익을 증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치있는 것을 꿈꾸고, 그 꿈이 쌓여간다면 그것이 공동체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만화 동아리라면 만화 주제로 정치도 생각해보고. 아프리카의 밥 굶는 아이들도 생각해보고, 교육이 왜 이럴까 고민도 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작업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면, 꼭 프로젝트나 예산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21세기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품은 그러한 방식에서 더 나아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해보니까 참 매력적이다. 이곳(서울 우이동)이 도시이지 않나. 여기도 빈부격차 심하다. 그러나 서로 가까이 살면서 발견하는 희망적인 것들이 있다. 예전처럼 아이들을 같이 키우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정도는 아니지만, 도시의 환경과 상황 속에서 조금씩 함께할 것을 만들어간다면 공동체가 되는 것 같다. 네팔은 한국의 60년대 공동체가 살아있다.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다. 그래서 우리가 네팔에 도움을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자극을 많이 받는다. 문화가 달라도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다 같다.     <사진=품의 청소년 문화공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의 꿈은 무엇인가? A. 네팔 진출을 기점으로 우리의 길을 넓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세계 정세도 살피기 시작했다. 5년 안에 ‘아시아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 문화든 예술이든 좋은 일을 하는 청년들을 아시아에서 모아 1년 과정의 대학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고 각자 자신의 나라에 가서 청년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특정 나라에서 분쟁이 생겼다고 하면 같이 가서 돕는 식으로 연대할 수 있다. 우리가 제주 강정마을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서양의 평화활동가들이 오는 것처럼 아시아 사람들끼리 더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다. 관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만들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몇 번 바뀌긴 했는데 ^^) ‘아시아 청년 대안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품은 자본을 갖고 시작하지 않는다. ‘무늬만 학교’도 돈 없이 시작했다. 학교를 만들자고 하면 보통 건물부터 지어야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꼭 그렇게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해왔고 그들이 그것을 진리인 줄 아는 것뿐이다.        <사진=품공동체 사무실 현관과 '무늬만 학교' 공간 ⓒyanaci>    정리_by Yanaci[출처] [인터뷰] 사람의 순환, 문화의 나비효과를 기대하다 -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2)|작성자 기분좋은QX  

2020.06.06
[2015.04] 기분좋은QX_"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심한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품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해온 단체입니다. 1년 과정의 청소년 주말학교인 ‘무늬만 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소년들을 대하는 청년들을 교육하여 그 가치를 확산하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우이동에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편, 네팔에서 10년째 다양한 청년들과 교류하며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품의 지난 20년의 활동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꿈과 철학, 그리고 재미있는 일상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두 편에 걸쳐 올립니다.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의 꿈을 키우고 지지해온 20년 여정  "놀이와 공부의 구분은 없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사진=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목적이 궁금하다. A.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꿈을 가진 아이가 그것을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꿈이 없는 아이가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원래 아이가 성장할 때 여러 가지 꿈을 만들어주는 곳이 집과 학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꿈을 가장 많이 짓밟는 곳이 학교와 집이다. 학교는 꿈을 키운다기보다 사회에서 규정한 좋은 길을 코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 우리가 만들어보자고 하여 시작했다. Q. 품이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A. 품은 아무 것도 없이 작은 지하실 공간을 만들어 시작했다. 올해 벌써 20주년이다. 그간 변화가 많았다. 한국 사회에는 게임은 있는데 놀이가 없다.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먼저 놀게 하자는 뜻에서 놀이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음악·연극 등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꿈을 가질 수 있다. 자기 꿈을 가졌을 때 세상에 나가서 내적동기를 가지고 사유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해가며 현재의 ‘무늬만 학교’까지 세웠다. 오랜 과정 끝에 우리가 “이게 해답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지역’이다. 커뮤니티 안에서 아이들을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장차 아이들의 눈은 세상을 보고 지구 전체를 봐야하지만, 성장하는 동안은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 잘 커야한다. 그게 해답이라고 느낀 후 지역에 집중했다. Q.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기 시작했나? A. 우리가 먼저 학교나 관공서, 청소년 단체 등에 찾아갔다. 전국으로 쫓아다녔다. 그때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렇게 떠도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불러오게 되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학교와 교육에 대한 품의 접근 방법은 무엇인가? A. 품이 20년간 활동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훌륭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많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학교 안에는 별로 없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괜찮은 교수님도 더러 있지만 실제로 좋은 교사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밖에 있다. 품은 그런 사람들로 교사로 세운다. NGO·도시개발·사회복지·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는다. 올해에는 또 변화가 있었는데 외부 전문가 대신 동네 강사를 세웠다. ‘무늬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 동네 사람 등이다. 물론 아무런 맥락 없이 강사를 시키지는 않는다. 맥락을 다 이해하는 강사들을 세우거나 강사에게 맥락을 이해시킨다. 공교육에서는 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정해진 강사가 와야 하고, 또 교사의 기준도 엄격하고 많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실제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더 훌륭한 것들을 차단하고 있다. 지역에 함께 있으면 아이들을 돌보기가 좋다. 학교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우리 마을에 목공소가 있다. 전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목공소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모아 목공소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작업도 하고, 마을 사람을 위한 작업도 한다. 우리 고3학생 중 한 명이 대학에 가기는 싫어하는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좋아한다. 이 경우 학생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업학교에 무료로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해진 틀과 교사가 있다. 이 아이에게는 고역이다. 그래서 아이를 마을에 있는 목공소에 보내기로 했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마을에 조그마한 초등대안학교가 있는데 그 안의 프로젝트 중 목공수업이 있다. 마을 목공소를 운영하는 분이 그곳에 선생님으로 나가시는데 이 고3학생이 보조교사로 가기로 결정됐다.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학교에 16살짜리가 보조교사로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20~30대 강사보다 14살 16살 형 오빠이다. 그래서 보조교사로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는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 기존에 갖고 있는 학교에 대한 관념을 버리면 아름다운 학교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해보는 것이다.        <사진='무늬만 학교' 학생들의 활동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무늬만 학교’도 그런 의미로 만들었다. 작년에 1년 과정을 처음 시작한 것이지만 그 전부터 아카데미 등을 많이 해왔다. 한 2~3년 후에는 어떤 방식이든 품만의 학교를 만들 것이다. 동네에서 활동하다가 다른 지역도 가보고, 네팔에 가서 또 한 3개월 있어보고 이런 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시스템으로 다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공교육도 필요하다. 공교육이 맞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같은 방식이 불편한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다가 힘들고 흔들릴 때가 있다. 현재 방식에서는 그렇게 힘들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10대 학생들에게는 없다. 중학교도 휴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잠시 학교를 가지 못해도 퇴학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학생이 심적으로 흔들릴 때는 휴학하고 ‘무늬만 학교’ 같은 데도 와보고, 다른 활동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기유발을 얻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왜 자꾸 프랑스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가? 그곳에는 정규 대학도 있지만 아카데미가 굉장히 많다. 선택권이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풍요로운 것 같다. Q. ‘무늬만 학교’를 찾는 학생들은 어떤 친구들이 많은가? A. 학교 다니는 아이들,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 등 다양하게 있다. 중학교부터 고3까지 학년 제한이 없는 통합교육이다. 자발적으로 오는 아이들도 있고, 엄마가 데리고 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일단 부모님 중 한 분이 꼭 오셔서 심층면접을 해야 한다. 부모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은 처음에 좀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학교를 무시하고, 학교도 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작년 가을에는 성북교육청 국장님이 품 사무실에 찾아왔다. 품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교육청에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하더라. ‘살다가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지금 성북교육청과 같이 학생임원단 워크숍을 해주고 있다. 공교육 계에도 점차 우리와 이야기가 통하는 교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에서는 처음에 아이들과 관계 맺을 때 놀이로 시작하나? A. “처음에는 놀면서 시작해서 그 다음에 공부로 접근하나?” 하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질문이다. 이미 질문 속에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와 공부를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노는 것이 사고를 더 필요로 한다. 학습이라고 하면 자꾸 앉아서 뭘 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보통 커리큘럼을 보면 아이스브레이킹 하고 워밍업 하며 시작하고 이런 방식인데, 한 20년 해보니까 그것도 다 인위적인 것 같다. 경험을 쌓다 보니까 다양한 것을 섞어가면서 그때그때 극본 없이 갈 수 있겠더라. 수업이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놀 때 수업 같기도 하다. 내가 일과 여가의 구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공간 안에 악기도 있고 아이들과 밴드도 한다. 품은 이 안에서 그런 것이 다 이뤄진다. 단지 돈이 없을 뿐이다.(웃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즐거워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고. 1년에도 몇 번씩 네팔에 가는데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한다. 가서 친구도 만나고 산에도 가고 마을에 가서 일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20년 동안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었다.     <품 공동체 심한기 대표님의 인터뷰는 다음 포스트에 이어집니다.>    정리_by Yanaci [출처] [인터뷰]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1)|작성자 기분좋은QX  

2020.06.06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심한기 대표를 만났습니다. 품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그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해온 단체입니다. 1년 과정의 청소년 주말학교인 ‘무늬만 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소년들을 대하는 청년들을 교육하여 그 가치를 확산하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우이동에서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편, 네팔에서 10년째 다양한 청년들과 교류하며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품의 지난 20년의 활동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꿈과 철학, 그리고 재미있는 일상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두 편에 걸쳐 올립니다.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청소년의 꿈을 키우고 지지해온 20년 여정  "놀이와 공부의 구분은 없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사진=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목적이 궁금하다. A.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꿈을 가진 아이가 그것을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꿈이 없는 아이가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원래 아이가 성장할 때 여러 가지 꿈을 만들어주는 곳이 집과 학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의 꿈을 가장 많이 짓밟는 곳이 학교와 집이다. 학교는 꿈을 키운다기보다 사회에서 규정한 좋은 길을 코치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니 우리가 만들어보자고 하여 시작했다. Q. 품이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A. 품은 아무 것도 없이 작은 지하실 공간을 만들어 시작했다. 올해 벌써 20주년이다. 그간 변화가 많았다. 한국 사회에는 게임은 있는데 놀이가 없다.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먼저 놀게 하자는 뜻에서 놀이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음악·연극 등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꿈을 가질 수 있다. 자기 꿈을 가졌을 때 세상에 나가서 내적동기를 가지고 사유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문학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발전해가며 현재의 ‘무늬만 학교’까지 세웠다. 오랜 과정 끝에 우리가 “이게 해답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지역’이다. 커뮤니티 안에서 아이들을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장차 아이들의 눈은 세상을 보고 지구 전체를 봐야하지만, 성장하는 동안은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 잘 커야한다. 그게 해답이라고 느낀 후 지역에 집중했다. Q. 초창기에는 아이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기 시작했나? A. 우리가 먼저 학교나 관공서, 청소년 단체 등에 찾아갔다. 전국으로 쫓아다녔다. 그때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렇게 떠도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불러오게 되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학교와 교육에 대한 품의 접근 방법은 무엇인가? A. 품이 20년간 활동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훌륭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많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학교 안에는 별로 없다. 대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괜찮은 교수님도 더러 있지만 실제로 좋은 교사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밖에 있다. 품은 그런 사람들로 교사로 세운다. NGO·도시개발·사회복지·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는다. 올해에는 또 변화가 있었는데 외부 전문가 대신 동네 강사를 세웠다. ‘무늬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 동네 사람 등이다. 물론 아무런 맥락 없이 강사를 시키지는 않는다. 맥락을 다 이해하는 강사들을 세우거나 강사에게 맥락을 이해시킨다. 공교육에서는 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정해진 강사가 와야 하고, 또 교사의 기준도 엄격하고 많다.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지만, 실제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더 훌륭한 것들을 차단하고 있다. 지역에 함께 있으면 아이들을 돌보기가 좋다. 학교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우리 마을에 목공소가 있다. 전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목공소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모아 목공소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작업도 하고, 마을 사람을 위한 작업도 한다. 우리 고3학생 중 한 명이 대학에 가기는 싫어하는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좋아한다. 이 경우 학생을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업학교에 무료로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해진 틀과 교사가 있다. 이 아이에게는 고역이다. 그래서 아이를 마을에 있는 목공소에 보내기로 했다.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마을에 조그마한 초등대안학교가 있는데 그 안의 프로젝트 중 목공수업이 있다. 마을 목공소를 운영하는 분이 그곳에 선생님으로 나가시는데 이 고3학생이 보조교사로 가기로 결정됐다.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보통의 학교에 16살짜리가 보조교사로 갈 수는 없다. 그런데 실제로 초등학생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20~30대 강사보다 14살 16살 형 오빠이다. 그래서 보조교사로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는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 기존에 갖고 있는 학교에 대한 관념을 버리면 아름다운 학교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해보는 것이다.        <사진='무늬만 학교' 학생들의 활동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무늬만 학교’도 그런 의미로 만들었다. 작년에 1년 과정을 처음 시작한 것이지만 그 전부터 아카데미 등을 많이 해왔다. 한 2~3년 후에는 어떤 방식이든 품만의 학교를 만들 것이다. 동네에서 활동하다가 다른 지역도 가보고, 네팔에 가서 또 한 3개월 있어보고 이런 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학교이다. 시스템으로 다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공교육도 필요하다. 공교육이 맞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같은 방식이 불편한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다가 힘들고 흔들릴 때가 있다. 현재 방식에서는 그렇게 힘들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10대 학생들에게는 없다. 중학교도 휴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잠시 학교를 가지 못해도 퇴학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학생이 심적으로 흔들릴 때는 휴학하고 ‘무늬만 학교’ 같은 데도 와보고, 다른 활동도 하면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기유발을 얻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왜 자꾸 프랑스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가? 그곳에는 정규 대학도 있지만 아카데미가 굉장히 많다. 선택권이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풍요로운 것 같다. Q. ‘무늬만 학교’를 찾는 학생들은 어떤 친구들이 많은가? A. 학교 다니는 아이들,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 등 다양하게 있다. 중학교부터 고3까지 학년 제한이 없는 통합교육이다. 자발적으로 오는 아이들도 있고, 엄마가 데리고 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일단 부모님 중 한 분이 꼭 오셔서 심층면접을 해야 한다. 부모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은 처음에 좀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학교를 무시하고, 학교도 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다. 작년 가을에는 성북교육청 국장님이 품 사무실에 찾아왔다. 품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교육청에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왔다고 하더라. ‘살다가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지금 성북교육청과 같이 학생임원단 워크숍을 해주고 있다. 공교육 계에도 점차 우리와 이야기가 통하는 교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Q. 품에서는 처음에 아이들과 관계 맺을 때 놀이로 시작하나? A. “처음에는 놀면서 시작해서 그 다음에 공부로 접근하나?” 하는 질문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질문이다. 이미 질문 속에서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놀이와 공부를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노는 것이 사고를 더 필요로 한다. 학습이라고 하면 자꾸 앉아서 뭘 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 보통 커리큘럼을 보면 아이스브레이킹 하고 워밍업 하며 시작하고 이런 방식인데, 한 20년 해보니까 그것도 다 인위적인 것 같다. 경험을 쌓다 보니까 다양한 것을 섞어가면서 그때그때 극본 없이 갈 수 있겠더라. 수업이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놀 때 수업 같기도 하다. 내가 일과 여가의 구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공간 안에 악기도 있고 아이들과 밴드도 한다. 품은 이 안에서 그런 것이 다 이뤄진다. 단지 돈이 없을 뿐이다.(웃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즐거워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고. 1년에도 몇 번씩 네팔에 가는데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한다. 가서 친구도 만나고 산에도 가고 마을에 가서 일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20년 동안 재미있게 활동할 수 있었다.     <품 공동체 심한기 대표님의 인터뷰는 다음 포스트에 이어집니다.>    정리_by Yanaci [출처] [인터뷰] 청소년의 선택권이 다양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 품공동체 심한기 대표 (1)|작성자 기분좋은Q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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